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회사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정몽구(70) 현대기아차 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첫 공판이 20일 서울고법 형사20부(수석부장 길기봉) 심리로 열린다. 1, 2심과 대법원 상고심을 거치며 사실관계는 대부분 확정돼 있어 파기환송심은 1,2차례 공판을 연 뒤 바로 선고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문제는 양형이다. 2심 재판부는 정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8,400억원의 사회공헌기금 출연 및 기고ㆍ강연 등 사회봉사명령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형법은 사회봉사를 ‘노역’ 형태로 정하고 있어 금원 출연은 허용될 수 없고, 강연과 기고는 취지가 불분명해 다툼이 발생할 수 있다”며 사건을 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한마디로 “적법하고 적절한 형을 다시 정하라”는 것이다.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고민에 빠진 것도 이 부분이다. 693억원을 횡령하고 회사에 1,000억원대의 손실을 끼친 경제범에 대해 ‘노역’ 형태의 사회봉사명령을 내리는 게 모양새가 이상하고, 정 회장이 70대의 고령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실형 선고도 쉽지 않다. 집행유예 판결로 경영 일선에 복귀한 정 회장에게 이제 와서 실형을 선고하면 법원의 신뢰가 추락할 수 있고, 또 전심 재판부의 판결 취지를 외면하기도 어렵다.
‘불이익 변경 금지의 원칙’적용 문제에 대한 고민도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 368조는 ‘피고인이 항소한 사건과 피고인을 위해 항소한 사건에 대해서는 원심 판결의 형보다 중한 형을 선고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번 사건은 검사가 사회봉사명령 판결에 대해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며 상고한 경우로서 법리적 해석의 여지가 남아 있어 적용 여부는 미지수다.
그렇다고 사회봉사명령 없이 집행유예를 선고하면 “결국 봐주려고 파기환송했냐”는 비판 여론이 제기될 수 있어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길 수석부장은 사건이 배당된 지난달 21일 이후 재판에 대해 “노코멘트”로 일관하면서 “사건기록과 판례 등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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