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이 희박해 보였던 112층(555m) 높이의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 건설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절대 불가’였던 군의 입장이 ‘다각도 검토’로 급선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 일각에서는 제2롯데월드 건설이 추진될 경우 성남 서울공항이 아예 내쫓기거나 반쪽짜리 공항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적지않다. “이명박 정부의 친기업 정책이 안보를 위협한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방부의 입장 변화
국방부 관계자는 19일 제2롯데월드 건설과 관련, “모든 방안을 대상으로 원점에서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와 공군은 그동안 항공기 이착륙시 충돌 가능성 등 비행안전 문제로 203m 이상의 건물 신축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줄곧 유지해 왔다.
공군 측은 초고층 건물이 들어설 예정지는 서울공항을 이용하는 항공기의 계기비행 접근보호 구역(고도 203m)에 들어가 자칫 ‘9ㆍ11 테러’ 처럼 항공기가 건물에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정부 역시 지난해 7월 군의 입장을 수용해 555m 높이 건물의 신축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제2롯데월드 건설 무산은 기정 사실화 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국방부는 입장을 바꿨다. 군 주변에서는 “국방부가 이명박 대통령의 최근 발언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투자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민관합동회의’에서 롯데측의 제2롯데월드 신축 요청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음날 국무회의에서 이상희 국방장관이 이에 대해 어렵다는 의견을 냈지만 결국 군 통수권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이 장관은 “외국 귀빈을 태운 대형 항공기가 서울공항을 이용할 때 위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고, 이 대통령은 “인천이나 김포공항을 이용해도 되는 것 아니냐”며 활주로를 변경해 초고층건물을 지은 대만의 예를 든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에도 제2롯데월드 건립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안보 후퇴, 기업 특혜 논란
군이 검토중인 안으로는 우선 기존 서울공항을 옮기지 않고 새 활주로를 만드는 방법이 있다. 기존 활주로 방향을 변경할 수도 있지만 이경우 새로운 활주로를 건설할 때보다 공사비가 더 들어간다. 하지만 새 활주로를 만들 경우 새로 일부 부지를 매입해야 하는데, 주민들의 반발로 성사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
국방부 관계자는 “일반적인 상황을 말하자면 활주로 확장은 법적으론 토지 수용을 통해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점이 있다”며 “다른 공항의 경우에도 과거 그러한 전례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헬기를 제외한 항공기를 다른 기지에 분산 배치하는 방안 역시 유력하게 검토할 수 있는 안이다. 그러나 정찰기, 수송기 등을 다른 기지에 배치할 경우 격납고와 각종 지원시설 등을 새로 짓는 등 수 천 억원의 막대한 비용이 예상된다.
한 기업의 특정 사업을 위해 막대한 국고를 축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 밖에 가능성은 비교적 낮은 편이지만 서울공항 전체가 이전하는 것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서울공항이 일개 기업의 초고층 건물 신축에 밀려 평가절하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게 군 안팎의 시각이다. 서울공항이 갖는 군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는 뜻이다.
서울공항에서는 금강, 백두라는 이름의 우리 군 정찰기가 뜨고 내린다. 이 정찰기들 덕분에 미국에 의존하는 대북 정보를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 특전사 등 수도권의 부대들은 유사시 즉각 가까운 서울공항을 이용해 수송기로 이동하게 된다.
주한미군 역시 한국과 맺은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성남기지를 함께 사용하고 있으며, 유사시 주한 미국인 집결지도 서울공항이다.
한 군사 전문가는 “국가 경제에 엄청난 도움을 주는 사업도 아니고, 기업 회장의 개인적인 염원에 따라 추진되는 사업 하나에 국가의 중요한 군사기지가 흔들린다면 아주 좋지 못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진성훈 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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