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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13> 그네-자유와 사랑의 비행선(飛行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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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13> 그네-자유와 사랑의 비행선(飛行船)

입력
2008.05.19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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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연애담은 성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이야기일 것이다. <춘향전> 의 판소리 공연이나 소설 텍스트를 직접 접해보지 못한 이들도 줄거리는 알고 있다. 얼마쯤은 영화 덕분이다.

한국의 첫 발성영화가 바로 <춘향전> (1935, 이기명 연출)이었고, 그 뒤로도 수많은 연출자들과 연기자들이 이 사랑이야기를 거듭 해석해 왔다.

춘향으로 분(扮)하는 것이 한국 여배우들의 꿈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 시절, 춘향 역을 맡는다는 것은 당대 최고의 여배우가 됐다는 뜻이었다. 이기명의 영화에 문예봉이 춘향으로 출연한 이래, 조미령, 최은희, 김지미, 홍세미, 장미희 같은 일급 연기자들이 이 조선조 러브스토리의 주인공 노릇을 했다.

춘향의 그네는 사랑 이야기의 고전

남원 광한루에서 어느 단옷날 움튼 그 사랑의 매개는 그네였다. 버드나무 가지에 매인 그네. 춘향은 푸른 하늘을 가르며 그네를 탔고, 먼발치에서 그녀의 율동을 살피던 몽룡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신분을 건너뛴 사랑이 시동을 걸었다.

갖신을 벗어 던지고 버선발로 그네에 오른 춘향은, 미당 서정주의 입을 빌려, 이리 겨워한다.

"향단(香丹)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이 다수굿이 흔들리는 수양버들 나무와/ 벼갯모에 뇌이듯한 풀꽃뎀이로부터,/ 자잘한 나비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조 내어밀듯이, 향단아// 산호(珊瑚)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다오./ 채색(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다오!// 서(西)으로 가는 달 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波濤)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다오/ 향단아"(<추천사[鞦韆詞]--향단의 말 1> 전문).

비상(飛翔)의 욕망과 그네뛰기의 쾌감을 이처럼 생생히 표현한 노래도 달리 찾기 힘들 것이다. 이 시에 나오는 동사들, 곧 '밀다' '흔들리다' '올리다' '울렁이다' 따위는 그네뛰기의 언어이면서 사랑의 언어다. 춘향이 "채색한 구름 같이 나를 밀어 올려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다오!"라고 말할 때, 하늘로 날 채비를 하는 것은 그녀의 몸뚱이만이 아니라 마음이기도 하다. 그 아찔함, 그 울렁거림과 두근거림, 그 숨가쁨은 그네의 생리학일 뿐만 아니라 연애의 생리학이다.

숨가쁨의 생리가 연애의 생리학과 통해

춘향은 처음 한 발을, 이어 두 발을 다 그네에 올려놓았을 것이다. 그넷줄을 잡은 그녀의 양손에 힘이 들어갔을 것이다. 몸의 중심을 잡은 춘향은 무릎을 굽혔다 뻗으며 그네를 구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녀의 몸이 왕복운동에 실리기 시작했을 것이고, 마침내 공중으로 날아올랐을 것이다.

춘향의 옷은 펄럭였을 것이고, 속곳 속까지 바람이 들락거렸을 것이다. 자유닷! 일탈이닷! 스릴이닷! 곧, 청춘이닷! 그 시절, 그네뛰기는 여염 처자에게 드물게 허용된 바깥놀이였을 것이다.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날리는 치맛자락을 보고 몽룡은 마음이 싱숭생숭 산란해졌을 것이다.

미당이 <추천사> 를 끄집어낸 장면은, 민제(閔濟) 선생이 현대어 표기로 다듬은 <완판(完板) 열녀 춘향 수절가> 에 따르면, 이렇다. "한번 굴러 힘을 주며 두 번 굴러 힘을 주니 발 밑에 가는 티끌 바람 좇아 펄펄 앞뒤 점점 밀어가니 머리 위에 나뭇잎은 몸을 따라 흐늘흐늘 오고 갈 때, 살펴보니 녹음(綠陰) 속에 홍상(紅裳) 자락이 바람결에 내비치니 구만장천(九萬長天) 백운간(白雲間)에 번갯불이 쐬이는 듯, 첨지재전(瞻之在前) 홀언후(忽焉後)라, 앞에 얼른하는 양은 가비야운 저 제비가 도화일점(桃花一點) 떨어질 때 차려 하고 쫓이는 듯, 뒤로 번듯하는 양은 광풍(狂風)에 놀란 호접(蝴蝶) 짝을 잃고 가다가 돌치는 듯, 무산선녀(巫山仙女) 구름 타고 양대상(陽臺上)에 내리는 듯."

수사가 화려하기는 하나, 한자 성어들의 상투성과 과장 때문에 그네뛰기의 역동성이 외려 잦아든 듯하다. 춘향은 복화술사 미당에게 큰 빚을 진 셈이다.

그네는 왠지 화창한 봄날에 타야 제격일 것 같다. 북풍한설 몰아치는 겨울날에 그네를 뛰는 여인은 없을 것 같다. 이팔 16세 춘향과 몽룡의 러브스토리가 화창한 단옷날 시작된 건 당연하다. 따지고 보면 춘향이라는 이름부터 '봄내'라는 뜻이다.

그네뛰기를 마친 춘향이 장옷을 쓰고 오작교를 건너온다. 그녀를 기다리던 몽룡이 양반의 거드름을 피우며 말을 건넨다. "그대는 누구냐?" 춘향은 눈길을 들어 몽룡을 한 번 쳐다볼 뿐. 몽룡은 애가 타 본격적으로 '작업'을 건다. "흰 구름 하늘 꽃이 땅위에 내렸나, 아니면 물 위에서 자던 꽃이 아침이슬에 피었나?" 마침내 춘향이 답하며 수작이 오간다.

"꽃은 꽃이로되 구름꽃도 아니고 자던 꽃도 아니오." "세상에 다시없을 꽃다운 그대, 달빛 속 선녀인가 은하강변 직녀인가?" "달빛도 없는 날에 선녀 어이 있으며 칠월칠석 아니어든 직녀 어이 있으리까." "선녀도 아니요 직녀도 아니라면 광한루 봄바람이 내게 보낸 봄내인가?"

"광한루 봄바람은 나그네 봄바람, 부용당 깊은 곳의 봄내를 어이 알리. 이만 물러갑니다."(조령출 역 <춘향전> 텍스트를 손질했음) 이렇게, '봄내'와 '용꿈'의 사랑이 길을 잡았다. 사랑의 그네가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미당의 춘향은 슬픈 연서 그 자체

비행선이 발명되기 전까지, 그네뛰기는 사람이 제 몸을 공중 높이 띄우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사람은 그네 위에서 중력과 맞버텼다. 춘향의 그네는 이소연의 소유스 TMA 우주선이었다. 잠시나마 땅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을 그네는 꿈처럼 채워주었다. (널도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곡예사가 아닌 여느 사람들의 널뛰기는 몸을 직립자세로 붙박아둔다는 점에서 그네뛰기보다 더 순응적이다.) 곡예사들의 공중그네비행은 오직 줄에 기대어 날아 보고픈 몸의 소망을 가장 화사하게 구현한다.

굴곡과 시련 없이 사랑은 완성되지 않는다. 그네터에서 시작된 사랑을 뒤로하고 몽룡은 서울로 떠난다. 그에게는 '집안'의 룰이 있었고, 걸어야만 할 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입신양명이라는 길.

사람은, 사랑에 빠져 있을 때조차, 줄곧 그네 위에 있을 수만은 없다. 그네타기의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지상의 완고한 시간에 도로 두 발을 내려놓아야 한다.

남원에 남은 춘향은, 다시 미당의 입을 빌리자면, 제 허전한 속내를 이리 내비친다. "바닷물이 적은 여울을 마시듯이/ 당신은 다시 그를 데려가고/ 그 훠--ᄂ한 내 마음에/ 마지막 타는 저녁노을을 두셨습니다./ 그러고는 또 기인 밤을 두셨습니다."(<다시 밝은 날에--춘향의 말 2> )

가난한 연인들에겐 여전한 '사랑의 장소'

춘향의 몽룡은 기독교도의 예수와 방불하다. 그녀는 '신령님'을 부르며 "그의 모습으로 어느 날 당신이 내게 오셨을 때"라고 말한다. 그러나 갑이별의 아픔 정도로 사랑의 완성을 예비할 수는 없다. 본때 있는, 더욱 가혹한 시련이 필요했다.

그래서 춘향은 갇혀야 했고, 임박한 죽음을 차가운 현실로 느껴야 했다. '옥에 갇힌 꽃(獄中花)' 춘향은, 다시 미당의 입을 빌려, 아리땁고 슬픈 연서를 남긴다.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맞나든 날/ 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있든/ 그 무성하고 푸르든 나무 같이/ 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길 땅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드래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예요?// 더구나 그 구름이 쏘내기 되야 퍼부을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에요!(<춘향유문[春香遺文]--춘향의 말 3> 전문).

우리 모두 알고 있듯, <춘향전> 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그러나 미당의 '춘향의 말' 연작은 이 서러운 3편에서 끝난다. 해피엔딩은 순애(純愛)의 광채를 흐린다는 게 시인의 생각이었나 보다.

따지고 보면 이 3편에서 춘향과 몽룡의 사랑은 완성된다. 이 시의 마지막 두 연에서 춘향은, 첫 상봉의 단옷날 그네를 구르듯 사랑의 마음을 굴러, 도솔천 구름으로 날아 이미 몽룡과 함께 있으니.

수백 년 전 광한루에서만이 아니라 요즘도 조선 땅 도처에서 그네는 사랑의 배경이다. 어린 연인들, 가난한 연인들은 공원 한켠 그네에서 사랑을 속닥거린다. 그네의 16세기 형태는 '글위'다. 글위든 그네든 실체와 어울리는 이름이다. 근들거리고 흔들거리는 것이 바로 그네니. 발로 힘껏 구르는 것이 그네니.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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