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트 설로웨이 지음ㆍ정병선 옮김/사이언스북스 발행ㆍ874쪽ㆍ4만원
아웃사이더란 말은 매력적인 만큼 위험하다. 영국의 문학 평론가 콜린 윌슨은 <아웃사이더> 에서 니체, 톨스토이, 로렌스, 사르트르 등 세상에 큰 영향을 끼친 작가들을 ‘아웃사이더’라는 개념으로 묶고 그들의 분투와 영광을 설명했다. 또 최근 한 정치 평론집은 노무현 정권과 그 지지자들의 정체성을 ‘아웃사이더 콤플렉스’ 로 규정하기도 한다. 아웃사이더>
그렇다면 인간을 시스템 밖의 존재, 즉 국외자로 만드는 일차적 원인은 어디 있을까? 진화심리학자 프랭크 셜로웨이는 그런 존재가 후순위 출생자, 즉 동생들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문제의 출발점은 가족내의 구조적인 요인이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역사의 흐름을 바꿨다면 그들은 주목 받는 ‘예외적 개인’이다.
이를 학문적으로 입증해 내기 위해 셜로웨이는 자료 더미에 묻혀 살았다. 종교 개혁ㆍ프랑스 대혁명ㆍ공산주의 혁명 등 역사적 사건 121개, 코페르니쿠스 혁명ㆍ진화론ㆍ상대성 이론 등 과학적 혁신 28가지, 그 사건들에 개입된 사람 6,566명. ‘출생 순서, 가족 관계 그리고 창조성’이라는 부제를 달기 위해 필요했던 데이터다.
가족 내 지위를 좌우하는 근본 원리를 해독해 내는 데 필수적 관건은 출생 순서다. 급진적 이데올로기 혁명에서 후순위 출생자들이 이단적 대안을 지지할 확률은 첫째들보다 4.8배 높고, 기술적 혁명에서는 그 비율이 2.2배다. 이런 결론을 도출해 내기 위해 혈액 순환론, 뉴턴 혁명, 플랑크의 양자 가설, 불확정성의 원리 등 과학상의 혁명적 계기점에서 후순위 출생자들이 어느 정도로 지지를 보냈던가를 일일이 수치로 표시한다.
사람들이 급진적 변화점에 직면했을 때, 그에 대해 반대하도록 하는 것은 그가 첫째라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후순위 출생자들이 급진적 혁신을 지지할 확률은 첫째보다 무려 124배 높았다는 것이다. 성격적 측면에서도 통하는 사실이다.
첫째들은 후순위 출생자보다 책임감이 강하고 성취지향적인 반면, 후순위 출생자들은 나이 든 형제보다 사회적으로 더 성공한다. 그것은 항상 형을 따라잡으려 하는 둘째가 형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이다. 한편 막내는 막내로서의 특권적 지위에서 쫓겨날 염려가 없어, 게으른 응석받이가 되기 십상이다.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전통 사회의 경우, 두 명의 자식 중 더 어린 아이를 죽이는 관습은 ‘투자’의 관점에서 합리적이었다는 인류학적 해석도 제시된다. 첫째들이 ‘우량주’라면 동생들은 ‘투기적 저가주’이므로 첫째들이 편애된다는 것이다.
후순위 출생자보다 더 크고 강할 수밖에 없는 첫째들은 자신감이 넘치는데, 실제로 정치 지도자의 압도적 다수는 첫째다. 그러나 성장기에는 첫째보다 왜소할 수밖에 없는 후순위 출생자들은 첫째보다 더 이타적이고, 감정적으로 쉽게 동화되며, 동료 지향적이다.
이 같은 결론은 형제들이 부모로부터 물질적ㆍ정서적ㆍ지적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서로 경쟁한다는 대전제하에서 도출된다. 체 게바라가 혁명 당시 보여준 폭력성은 첫째들의 완고한 스타일을 웅변한다는 지적이다. 세 자녀 가운데 둘째였던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비폭력을 선호하는 중간 자식들의 성향을 예증한다. 정치적 선택에서 첫째들은 파시스트나 절대군주적 태도를, 후순위 출생자들은 사회주의자나 평화주의자적 선택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책의 출발점은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이다. 환경에 유리한 변종들은 보존되지만 불리한 변종들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책은 19세기 사람들이 그 이론을 접하고 “의도가 유해하다”, “야비한 유물론이다”라는 등 극도의 거부감을 드러냈던 일을 상기시키며, 도입부 한 장을 이론의 설명에 바친다.
이 모든 담론을 촉발시킨 다윈은 어땠을까? 다행히도 그는 <자서전> 에서 추정 자료들을 풍성히 제시해 두었다. 항상 부친과 두 누이의 뒤 차례였던 그는 어머니를 자신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꾸짖는 인물로 기억했다. 그가 훗날 학문에서의 ‘혁명’을 성취하게 된 데에는 이러한 유전적 전략이 숨어 있다는 지적이다. 자서전>
이 책은 각종 관련 통계, 인물 선택 기준, 전문가 평가단, 없는 자료를 추정한 방법 등 실제적 연구 과정을 풍성한 부록으로 제시해 논의의 신빙성을 높이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홈 페이지(www.sulloway.org)를 통해 근황과 학문적 성과를 상세히 업데이트 하고 있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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