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제1]
제시문 (가)를 고려할 때, 제시문 (나)의 ‘세속적 입장’과 (다)의 ‘주체적 입장’은 통합 가능한 것인지 논술해 보시오. (800자 내외)
[논제2]
[논제1]의 답변을 바탕으로 제시문 (라)의 주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해 보시오. (800자 내외)
[제시문]
(가) 자유나 완전성 등의 심원한 말들이 선거운동 중인 정치가나 지도자들에 의해 라디오나 텔레비전, 영화에서 발언되면, 그 말은 의미 없는 소리로 변질되어 선전, 상업적 광고, 기분전환의 문맥으로만 의미를 갖게 된다. 다시 말해 자유나 완전성과 같은 이상이 영혼이나 정신 또는 내면적 인간의 승화된 영역에서 끌어 내려져 조작적인 용어와 문체로 번역된다는 뜻이다. 여기에 이른 바 대중문화의 ‘진보적’ 요소가 있다.
그러나 이런 도착(倒錯)이 제시하는 것은 우리 선진 산업사회가 이상의 물질화 가능성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사회의 잠재력은 인간의 조건이 표현되고, 이상화되고, 고발되는, 승화된 영역을 점차 감소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고급문화는 물질문화의 일부가 되고 또 이 변형을 통해 고급문화는 그 진리의 대부분을 상실한다. -마르쿠제, [일차원적 인간]
(나) 취향과 문화 소비를 연구하는 과학은 전혀 미학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접근이 이루어지는 경우에 시작한다. 즉 음악이나 음식, 회화, 스포츠, 문학과 헤어스타일에 대한 선호도처럼 언뜻 보기에는 전혀 같은 잣대로 잴 수 없어 보이는 ‘선택들’의 연관 관계를 이해 가능한 형태로 드러내려면, 정통 문화를 고립 무원한 독립된 우주처럼 분리시키고 있는 성스러운 경계선을 없애버려야 한다.
이처럼 야만적이지만 억지로라도 미학적 향유를 일상적 소비의 세계로 재통합시키게 되면, 칸트 이래로 고급스러운 학문적 미학의 토대를 이루어온 ‘감각의 취향’과 ‘반성의 취향’ 간의 대립, ‘편안한 쾌락’과 ‘순수한 쾌락’ 간의 대립을 폐기할 수 있다. (.....) 저급하고, 조잡하고, 천박하며, 타산적이고, 비굴할 수도 있는 문화, 한 마디로 자연스러운 기쁨을 부인하는 것, 바로 이것이 문화의 성역을 구성한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문화적 성역 의식은 은연중에 세속의 사람들은 영원히 접근할 수 없는 승화된 즐거움과 세련되며, 무욕적이고, 우아한 예술과 문화 소비를 배타적으로 규정함으로써, 사람들이 의식하건 그렇지 않건 또는 원하든 그렇지 않든 사회적 차이를 정당화하는 사회적 기능을 하게 된다. -부르디외, [구별짓기]
(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것이 ‘좋은 문화’라는 자신의 판단이 정말로 내 스스로 주체적인 입장에서 이루어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정말로 이것이 나의 삶의 조건과 욕구에 합당한 것이며 진정 나의 삶을 풍요롭고 주체적인 것으로 만들어 줄 문화인가 하는 의문이다. 어쩌면 내가 ‘좋은 문화’라고 생각하는 판단 기준이 단지 문화 산업의 광고 전략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 혹은 다른 사람들의 문화 행태에 자신도 모르게 영향을 받아서 생긴 것은 아닌가라는 자기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화에 대한 판단 기준은 많은 경우 외부적인 영향에 의해서, 특히 매스미디어와 문화 산업의 영향에 의해 형성된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자기의 목소리인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김창남, [대중 문화의 이해]
(라) 뮤지션이냐 싱어냐 하는 애매한 말장난 따윈 하고 싶지도 않다. 굳이 말하자면 우린 뮤지션이 아니라 대중가수다. 10대의 아이콘이고 관객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공연한다. 현란한 피아노 연주를 원한다면 피아노 독주집 앨범을 사서 들어라. 여러 음식 중에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이 있듯이, 우리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면 딴 걸 먹어라. 우린 우리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하지 않는다.
다행히 우리가 열심히 요리한 음식을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있고 그들을 위해 또다시 열심히 일할 뿐이다. (.....) 우리가 무대에서 들려주는 음악으로 관중들은 열광하고 기뻐한다. 그런 팬들의 기운을 받아 우린 더 열심히 준비하고 활동한다. 기쁨을 주고 보람을 얻는다. 뭐가 더 필요한가? -에릭의 [신화를 비판하려면 자격을 갖춰라]
♠ 제시문, 제시문 분석 및 논제 분석의 전문은 EBSi 논술방(www.ebsi.co.kr)에 게재
[제시문 분석]
(가) 상업적 목적에 의해 형성ㆍ강요된 자본주의적 ‘물질문화’에 맞서 ‘고급문화’의 가치를 역설하는 글이다. ‘고급문화’란 현재의 삶을 넘어서는 이상의 표현으로서, 이를 통해서 비로소 인간은 인간다운 삶을 스스로 창조해가는 주체일 수 있다.
(나) ‘반성적이며 승화된’ 정신적 쾌락의 산물인 정통 문화는 저급하고 자연적인 쾌락과 연결된 일상적인 문화로부터 스스로를 구분하여 탉뵌?構? 이렇게 신성화된 문화의 소비는 계급의 차이를 사회적으로 정당화하게 된다. 이 글은 그 둘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야 함을 역설한다.
(다) 무엇이 좋은 문화인가에 대한 판단은 매스미디어와 문화 산업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나 자신의 주체적인 입장에서 이루어진 것이어야 한다.
(라) 신화의 멤버 에릭이 신화의 음악성에 대한 비판에 대해 제시했던 답변이다. 에릭은 자신들은 대중 스타로서 대중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것으로 보람을 얻는다고 말한다.
[출제 의도]
[1번 논제]는 제시문의 수가 많아 다루기 어려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발문의 지시에 따라 차근차근 풀다보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논제다. 이 논제는 제시문의 주장들 사이의 연관을 파악해내고 그것을 일관성 있게 묶어낼 수 있는 종합적 사고를 기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논제에서는 먼저 (가)를 통해 ‘고급문화’가 가지는 본래적 목적을 이해한 뒤, (나)를 통해 일상적인 문화와 고급문화를 대립시키는 입장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를 가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이 때 제시문 (다)에서 언급된 ‘주체적 입장’이 일상적인 문화와 소수의 세련된 문화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가치가 될 수 있음을 보이라는 것이다. [2번 논제]는 앞의 관점을 구체적인 사안에 적용시켜 보도록 요구하고 있다. 물론 에릭의 입장을 옹호할 수도 있고 그와는 다른 견해를 내놓을 수도 있지만, 그와 같은 자신의 평가가 진정한 의미에서 ‘문화’를 지향하는 태도와 맞물려 있는지 반성해볼 것을 요구한다.
[논제에 대한 접근 방식]
[1번 논제]에서는 우선 제시문 (가)와 (나)의 입장이 서로 대립되는 측면을 가지고 있음을 파악해야 한다. (가)는 고급문화의 가치를 역설하며 (나)는 고급문화를 그 성역에서 끌어내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둘을 서로 모순되는 것으로 파악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특정한 방식으로 종합할 수 있어야 한다.
제시문 (다)에서처럼 보다 나은 사회의 건설을 위한 이상의 추구는 주체적인 입장에서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고, 이런 관점에서 문화의 구분에 접근할 수 있다. [2번 논제]의 경우, 먼저 제시문 (라)에 대해 자신의 입장에서 판단을 내려보고, 그와 같은 판단이 [논제1]에서 자신이 제시한 입장과 일맥상통하는지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예시 개요]
[논제1]
1) 고급문화의 가치: 현실을 넘어선 이상적 가치의 모색
2) 이상적 가치의 모색은 주체적인 가치 평가에 의해 이루어진다.
3) 일상적 문화 소비의 영역에서는 주체적인 가치 평가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입장은 낡은 신화의 잔재다.
4) 일상적 소비의 영역에서도 이와 같은 주체적인 태도를 적용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
[논제2]
1) 에릭의 글의 요지를 정리한다.
2) 대중문화를 단지 하나의 획일적 잣대로 재단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3) 그러나 이것이 대중문화가 이상에 대한 모색으로부터 면제되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4) 대중문화 역시 나름의 방식으로 이상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염재철ㆍEBS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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