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결국 고개를 숙였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국민들의 분노에 결국 이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이 다소 부족했다고 잘못을 시인한 것이다. 집권 후 80여 일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쇠고기 재협상 등 정책 추진과정에서 많은 소통 상의 문제를 드러냈다. 따라서 대통령의 반성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는 아직도 반쪽의 반성, 아니 4분의 1쪽의 반성에 불과하다. 새 정부가 갖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단순한 소통 부족이 아니다. 이 점에서, 소통이 부족했다는 이 대통령의 반성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은 정부와 국민 사이의 정보단절 현상이 아니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헛다리를 짚는 것이라는 임철순 주필의 지적(2008년 5월 16일자)은 정곡을 찌른 것이다.
■ 협상내용 언급 않는 이 대통령
사실 소통이 부족했다는 인식 뒤에는 정책은 아무런 하자가 없는 올바른 것이지만 홍보를 잘못해서 국민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이는 보기에 따라 더 위험할 수도 있는 생각이다. 그 많은 문제점들이 줄줄이 나타나고 있는데도 아직도 정책에는 문제가 없고 소통이 문제라는 식의 인식을 하고 있단 말인가?
주목할 것은 이 대통령이 소통 부족을 이야기하면서 협상과정의 미숙함, 협상내용 등 정책 상의 잘못에 대해서는 전혀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협상과정에서 아주 기초적인 영어를 잘못 해석해 잘못 협상을 한 것을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 허긴 이를 보고서, 인수위 시절 “아린쥐” 운운하며 영어교육을 강조한 자신의 정책이 선견지명이 있었고 옳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문제의 핵심은 이 대통령이 단순한 소통을 넘어서 발상의 근본적인 전환을 하는 것이다. 정부는 기업이 아니며 대통령은 CEO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단순한 효율성을 넘어서 반대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이에 대해 고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의 박근혜 의원과의 회동만 해도 그렇다. 쇠고기 문제로 세상이 시끄러운 상황에서 양자 회동이라니 타이밍도 적절하지 않았지만 회동결과를 전해 듣고 개인적으로 충격을 받았다. 청와대가 이 대통령이 박근혜 의원에게 대표직을 제안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당규는 당 대표를 선거에 의해 당원들이 뽑도록 되어 있는데 당대표를 제의하다니, 이것이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이 대통령은 아직도 한나라당은 자신의 사당이고 당대표는 자신이 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박 의원은 그같은 제의가 없었다며 진실게임을 벌인 것이다. 그것이 뭐 자랑할 일이라고 진실게임까지 벌이나?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조금만 상식이 있으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일을 청와대가 공식적으로 발표까지 한 것이다. 다시 말해, 대변인을 비롯해 많은 수석과 보좌관 중에서 대표직을 제의하고 나아가 이 같은 제의사실을 발표하는 것은 한나라당이 대통령의 사당이라고 선포하는 것이니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대통령에게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한 명도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청와대에 예스맨만 모여 있고 벌써부터 권력의 핵심들이 건전한 자기 정화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집단사고에 걸려 있다는 증거이다.
■ 바른 소리 하는 사람이 왜 없나
이와 관련, 강준만 교수가 2008년 3월5일자 칼럼에서 이명박 정부는 집단사고를 벗어나기 위해 반대의견을 제기하는 것을 전담하는 악역 수석비서관을 두든지 하라고 꼬집은 바 있다. 그의 제안대로 악역 수석비서관을 두든지 해서라도 다양한 비판적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제도와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소통이 아니라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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