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말로 말 낳는 'MB 어법'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말로 말 낳는 'MB 어법'

입력
2008.05.19 00:23
0 0

대통령의 말이 온 나라를 들쑤셔놓는 경우가 많다. 그 한마디가 나라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말에서 국정을 읽고, 위안을 찾고, 미래를 본다. 그렇기에 대통령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세간의 큰 뉴스거리다.

역대 대통령들을 보면 저마다 독특한 말투와 어법이 있다. 그 속에는 통치스타일의 단면이 녹아 있다.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은 늘 과단성 있는 어법을 즐겨 썼지만 상명하달식 냄새가 곳곳에 배어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달변과는 거리가 있었으나 사투리 섞인 말투가 오히려 친숙한 이미지로 작용한 측면도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의 생각을 먼저 말하고 상대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신중한 소통지향형으로 역대 대통령 중 ‘말 사고’가 가장 적었다는 평가다. 이와 달리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말 때문에 엄청나게 고생한 지도자다. 정제되지 않은 어법으로 사회적 파장을 숱하게 자초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말도 벌써 도마에 오르고 있다. 쌍방향 소통형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권위적인 것은 절대 아니다. 저속하거나 부적절한 어투도 거의 쓰지 않는다. 말은 간결한 편이고, 현안마다 명료한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대통령의 발언으로 인해 사회적 논란이 야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왜 그럴까.

각종 현안에 대해 빠짐없이 즉각 반응하는 데다 자신이 내린 결론부터 직선적으로 앞세우는 것이 문제다.

당선인 시절인 1월 전남 대불단지의 전봇대를 불필요한 규제의 표본으로 지적하자 금방 뽑혔다. 또 성폭행 미수사건을 놓고 경찰을 질책하자 하루 만에 범인이 잡혔다. 여기까진 속 시원해 하는 국민이 많았다. 그러나 쇠고기 문제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그는 “(미국산 쇠고기가) 마음에 안 들면 적게 사면 된다”면서 “개방하면 (구매 여부는) 민간이 알아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소비자 선택에 맡기면 되는 것이라는 당연한 논리를 말한 것이다. 그러나 광우병 우려에 대한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인상을 주고 말았다.

그는 또 “(쇠고기 문제를) 정치 논리로 접근해 사회불안을 증폭시켜서는 안 된다”면서 “(광우병 논란 주도자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아니냐”고도 했다. 사회적으로 일부 그런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중학생까지 거리로 나온 상황에서 이런 일방적 매도가 받아들여질 리가 없다.

대북 문제에서도 이 대통령은 “북한이 이제까지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훈계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북측은 남측에 대해 극히 차갑게 대하면서 미국과의 직거래에 나서고 있어 우리만 다급해졌다. 중간 설명과정을 생략한 채 상식적 언명만 앞세운 결과다.

총선 직후에는 “국내에는 경쟁자 없다. 당내에는 친이(親李)는 없다. 친박(親朴)은 몰라도…”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단합을 강조하면서 자신은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 몰두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지만 “친이가 없다”는 표현은 지나쳤다. “친이가 엄연히 존재하고, 한나라당을 독판치고 있는 현실에 눈을 감았다”는 친박 진영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었다.

이 대통령을 다변(多辯)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업인 시절부터 몸에 밴 ‘얼리 버드(Early bird)’ 스타일로 지금도 워낙 많은 일정을 소화하고 있어 그만큼 발언할 수 있는 기회가 잦다 보니 다변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그렇게 다변이 아닌데도 발언 논란이 적지 않은 것은 이처럼 너무 많은 현안에 뛰어들어 직접 몸으로 부딪히면서 구체적 해법을 제시하기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부하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면 대부분이 추종한다. 상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과 국민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좀 다르다. 국민들은 각자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대통령의 말을 제각기 해석하는 법이다. 반성의 정치를 시작한 이 대통령이 제일 먼저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