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거 로이케(Rudger Reuke). 35년 간 독일 정부기관 DED(독일 개발원조기구)에 근무하다가 은퇴한 후 해외원조 민간단체 ‘German Watch’에서 일을 시작했다. 정부 연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 단체에서는 1유로(Euro)만 받고 일한다. 그래서 스스로 ‘1유로맨’이라고 부른다. 자신은 매일 출근해서 일할 곳이 있고, 세상을 위해 봉사할 수 있으며, 좋은 젊은이들과 함께할 수 있어 대만족이라고 행복해 한다.
■ 대책 없는 조기 퇴직세대 증가
2004년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의 초청으로 3개월 간 독일을 여행했을 때 바로 이 로이케씨를 만났다. 이 사람의 스토리는 단지 한 사람의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영국에도, 미국에도, 일본에도 수없이 있는 이야기일 뿐이다.
미국의 경우 성인 인구의 절반이 온갖 형태의 자원봉사를 하고 있고 자원봉사자들의 힘은 800만 명의 상근 노동자가 제공하는 과업과 같다고 한다. 더구나 미국이나 유럽의 이른바 ‘베이비 붐’세대, 일본의 ‘단카이(団塊) 세대’가 은퇴하면서 아직 건강한 노인들의 일자리 문제가 큰 사회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들을 사회의 부담이 아니라 사회 발전의 견인차로 만드는 것이 더없이 중요한 문제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런 전문직 은퇴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이미 50이 넘으면 벌써 명예퇴직의 압력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대기업 임원이나 고위 공직자로 일했던 유능하고 경험 많은 인재들이 버림 받고 있다. 언젠가부터 내 학교 동창들은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면 북한산 입구에서 모여 함께 등산을 하는 그룹이 생겼다. 최근에는 너무 많아져서 한꺼번에 등산하기가 힘들어졌다고 한다. 아직 50대 초반인데 직장에서 밀려나 등산이나 다니는 친구들이 훨씬 많아진 것이다.
그런데 정년이 없는 미국이나 어른의 경험을 중시하는 일본과 달리, 은퇴하면 그냥 퇴물 취급하는 우리나라에서 이들은 경로당과 노인정을 찾거나 등산과 낚시나 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 은퇴한 ‘젊은 은퇴자’들은 사회적 ‘고려장’을 당하고 있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일찍이 미국의 유명한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이렇게 말했다. “최초의 직업에서 퇴직까지를 인생의 전반전이라고 본다면 퇴직 이후의 인생을 인생의 후반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구나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의 경우, 나이가 45세 쯤 된 퇴직 중견 경영자들의 상당수가 지역의 병원으로, 학교로, 비영리기관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금년 하반기에는 저 유명한 빌 게이츠도 자신이 일군 마이크로 소프트에서 퇴직하고 제3세계 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자선활동에 몰두할 예정이라고 한다.
■ 공익에 기여할 일자리 개발을
우리나라에서도 ‘노인 일자리 박람회’도 열리고 ‘노인 일자리 알선 사업’이 정부나 사회기관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대체로 비전문적 단순 일자리를 염두에 둔 것이고 그것마저도 제대로 돈을 받고 취업하는 일은 드물다.
이런 마당에 희망제작소가 대한생명과 더불어 ‘행복설계 아카데미’를 열어 전문직 은퇴자들을 위해 사회공익을 위해 일하는 다양한 비영리단체에의 일자리를 주선하고 있다. 비영리단체(NPO)를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강좌, 현장 실습, 1대 1 컨설팅을 거친 후 이들은 다양하고도 아름다운 NPO의 세상으로 안내된다.
이미 4기째 수료자가 100여 명에 이르고 그 중에 30%는 NPO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있다. 자신의 풍요로운 삶은 물론이고 사회적 공헌의 효과 역시 작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전문직 은퇴자들의 인생 후반전의 본격적 설계와 실천은 시작일 뿐이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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