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오늘의 책] 만인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오늘의 책] 만인보

입력
2008.05.16 08:23
0 0

고은 / 창비

프랑스 작가 발자크는 “파리의 호적부와 겨루겠다”고 했다. 호적부보다 더 완전하게 당대의 사회상을 소설로 쓰겠다는 야심이었다. 한국 시인 고은(75)은 1986년 <만인보> 를 쓰기 시작하면서 “일만 겨레를 시로 호명하겠다”고 했다. 23년째 그는 호명을 계속하고 있다. 시 한 편에 한 명씩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살다 간 사람 4,000여명이 실명으로 등장한다. <만인보> 1~9권은 1930~40년대, 10~15권은 70년대, 16~20권은 한국전쟁, 21~23권은 80년대, 24~26권은 한국불교의 인물들을 다뤘고, 90년대 이후를 다룬 30권까지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고은의 이 놀라운 기획을 시로 쓴 한국 현대 인물사전이라고도 하지만, <만인보> 가 사전을 넘어서는 것은 그것이 ‘시’이기 때문이다. 고은은 대부분 자신이 만난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스쳐지났던 사람들, 이제는 사료ㆍ 자료의 더미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사람들까지 주술 들린 듯한 눈으로 꿰뚫어보며 거침없는 필치로 그려낸다. 짧은 시 한 편 한 편이 인간의 얼굴, 역사의 초상으로 되살아난다.

오늘 <만인보> 를 ‘오늘의 책’으로 쓰는 것은 5ㆍ16이 일어난 날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 사람들’이란 부제가 붙은 <만인보> 10~15권에서 가장 자주 호명되는 이름이,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박정희다. 물론 ‘박정희’란 시는 따로 한 편이 있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면 ‘청계천 뚝방 홍씨’에 ‘복부인 오여사’에 ‘신중현’에 ‘김대중’ ‘김영삼’ ‘노무현’ 등이 눈길을 붙든다.

그렇게 책을 뒤적이는데 문득 시 한 편이 보인다. ‘23세 이사/ 35세 사장/ 46세 회장// 70년대 개발연대기에는/ 한 샐러리맨이 이렇게 솟아올랐다//…/ 부디 그의 신화가 더 이어질수록/ 개박이 악이 아니라 선이기를/ 개발이 정치가 아니기를’. 그 제목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다. ‘개발이 정치가 아니기를’ 하고 썼던 시인은 이명박 정부의 거듭되는 실정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종오 기자 joha@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