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대통령 부부가 차를 타고 가다 기름이 떨어져 주유소에 들렀다. 그런데 주유소 사장이 힐리러의 옛 남자친구였다. 돌아오는 길에 클린턴이 물었다.“저 남자와 결혼했으면 지금쯤 당신은 주유소 사장 부인이 돼 있겠지?” 힐러리가 되받았다.“아니, 저 남자가 미국 대통령이 되어 있을 거야.”<여자라면 힐러리처럼ㆍ다산 북스 刊>여자라면>
당당함과 강인함으로 백악관을 향해 날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또 눈물을 떨궜다. 1월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에게 일격을 당하고 뉴햄프셔 예비선거 전날 흘린 눈물에는 분노와 결의가 뒤범벅됐다면 이번 눈물에는 절망이 묻어난다.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그가 스스로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오르려는 대망을 접을 때가 왔음을 직감했기 때문일 게다.
올해 초 경선시작 때만해도 민주당원이 힐러리의 눈물을 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선거의 3대 요소인 지명도와 조직, 자금에다 8년의 백악관 경험과 관록. 후보 당선 확률 80%가 말해주듯 누구도 그를 넘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꿈만 꾸는 이상주의자’로 여겼던 오바마의 바람은 힐러리의 철옹성을 단번에 허물어버렸다.
대세 오판, 큰 손 위주의 모금, 참모의 실수와 대형주 위주의 득표 전략. 힐러리의 추락을 두고 여러 분석이 쏟아졌다. 하지만 모두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 패배의 뿌리는 기득권에 안주한, 그래서 시대 변화의 흐름을 거부한 그 자신에게 있었다.
힐러리는 백악관 시절 8년 동안 부통령보다 더 깊숙이 정사를 들여다본 경험을 정치 신예 오바마를 꺾을 무기로 삼았다. 클린턴이 1992년 선거에서‘하나 값에 둘(Two for One)’전략을 구사했듯이 남편의 인기를 이용해 조지 W 부시 집권 8년을 견뎌온 민주당원의 마음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클린턴은 경제에는 성공했지만 정치에는 실패한 대통령이었다. 민주당원들은 빌러리 부부가 부르는‘올드 송’에 싫증을 내고 아프리카 출신 아버지를 둔 오바마의 뉴웨이브 뮤직을 골랐다. 경륜은 ‘체인지(Change)!’의 외침 앞에 무력했다.
힐러리의 실패담은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박근혜 의원이 곱씹어야 할 교훈이 될 것 같다.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나당 후보 티켓을 넘겨줬지만 그가 5년 뒤에도 강력한 대통령 후보가 될 것임은 틀림없다.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우리의 현실에서 박근혜는 힐러리 이상의 정치적 자산을 지니고 있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정치에 무혈입성했다는 이미지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씻어가고 있다.
친박연대가 ‘박근혜’ 이름만으로 대통령의 측근들을 줄줄이 낙마시킨 것으로 정치적 영향력은 충분히 입증됐다. 박정희 향수를 자극하는 혈통적 유산과 현대판 왕족의 풍모를 연상시키는 매력도 지녔다. 워싱턴에서 3년을 지내는 동안 수많은 정치인들이 다녀갔지만 간담회가 있었던 식당의 주인이나 종업원이 사인을 해달라고 달려든 경우는 박근혜밖에 없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에게서 시대의 변화를 읽으려는 의지는 희미하다. 친박연대 의원들을 복당시키기 위해 대통령과 담판하는 결기를 보였지만 동시에 계파이익을 위해 떼쓰는 인상을 남겼다. 정치적 생존전략인지 몰라도 기득권을 지키려는 정치적 야심으로 비친다. 영남의 맹주라는 타이틀과 보수적 이념 편향성은 그의 정치적 팽창을 막고 있다. 좌에서 우로 기운 표심이 5년 뒤에도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이 모든 한계를 이겨내는 지름길은 계파의 이해가 아니라 국민에게 다가서려는 마음가짐이다. 그 변화의 길을 스스로 추구하지 않을 경우 그도 눈물을 흘려야 할지 모른다. 5년 뒤 한국판 오바마를 꿈꾸는 잠재적 경쟁자들은 많다.
김승일 국제부장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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