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정엄마를 모시고 중학생인 딸과 함께 모녀 3대가 모처럼 봄나들이를 갔다. 마침 ‘하이 서울 페스티벌’행사도 있기에 엄마와 딸과 함께 청계천변을 걷고 이런 저런 행사를 기웃거리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딸에게 읽혀주고 싶은 책이 있어 근처 대형서점엘 들어갔다. 휴일이라 그런지 서점 안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하이고, 무신 서점이 이래 크노. 나는 서점에는 책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음식도 팔고… 별거 별거 다 있구나.” 엄마는 평생 처음 서점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평생 처음으로 엄마와 서점엘 와본 거네…. “저래 털퍽털퍽 바닥에 앉아도 되는기가? 아무 책이나 막 꺼내봐도?” “그 맛에 오는 건데 뭐. 엄마 힘들 테니까 여기 앉아 있어. 누리랑 책 고르고 올께, 어디 가지 말고, 알았지?” 그리곤 딸을 데리고 소설책 코너로 가서 한참 책을 고르고, 또 내가 읽고 싶었던 책도 꺼내서 몇 줄 씩 읽기도 하다가 문득 엄마 생각이 나서 돌아보니 엄마가 없는 게 아닌가. 인파에 휩쓸려 잃어버린 건 아닌가 싶어 부리나케 엄마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골똘하게 뭔가를 내려다보는 엄마의 작달막한 뒷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내가 태어난 후 처음으로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엄마 모습을. 내가 알기론, 우리 엄마는 책은커녕 여성지 한 권 들여다 본 적이 없는 분이었다. 그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뭔지 조금 웃기기도 하고 왠지 좀 뭉클하기도 한 그런 복잡한 마음으로 엄마에게 다가가 “뭐 보고 있어, 엄마?” 하고 묻다가 난 또 한번 놀랐다.
우리 엄마가 골몰해서 읽고 있는 것은 외국 심리학자가 쓴 책이었던 것이다. 우리 엄마가 이런 어려운 책을 다 읽다니, 그것도 대충 넘기는 게 아니라 열중해서 말이다. 그런데 엄마의 다음 말에 난 더 놀라고 말았다. “이 책, 참 재미있구나.” 나 같으면 수면제 대용으로나 읽음직한 책을 들여다보며 재미있다고 하다니….
“사줄까, 엄마?” “을맨데?” “만 이천원이네.” “하이고, 머 이리 비싸노, 책이.” 엄마는 평생 처음 서점엘 들어왔으므로 책값을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낸 오래 못 딜다본다. 눈도 아리아리 하고 목고개도 아프고, 아~들 책이나 사조라.” 사주겠다는 데도 엄마는 부득부득 됐다고 우기며 애들 책이나 더 사주라고 하셨다. 그리고 딸아이에게 말했다. “할매는 지금도 학교 가는 꿈을 자꼬 꾼다. 공부할 때가 좋을 때다. 열심히 하레이.” 그러더니 박경리 선생님이 쓰신 책의 표지를 보다가 작가 소개에 나와있는 약력을 보시고는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데도 여고까지 졸업했네”하며 서글프게 혼잣말을 하셨다.
올해 66세인 우리 엄마는 국민학교에 입학했다가 6ㆍ25전쟁으로 휴교령이 내려지는 통에 몇 년 후인 열두살 때 다시 1학년으로 재입학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후의 빈한한 삶과 주렁주렁 달린 동생들을 장사하는 외할머니 대신 돌봐야 했기 때문에 하루 학교 가면 하루는 못 가는 날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지지바가 공부는 무신 공부! 살림이나 배워 시집이나 가거라”하는 외할머니의 불호령에도 엄마는 공부가 하고 싶어 책보를 가로 매고 학교로 뛰어가곤 했다고 한다
한량인 외할아버지 대신 쌀을 이고 장사를 다니던 외할머니는 집안 살림이며 어린 자식들 치다꺼리를 엄마에게 맡긴 터라 엄마가 학교에 다니는 것이 못마땅했는데 아무리 매 타작을 해도 어떻게든 학교를 가려는 엄마에게 “빨래 다 풀해 널고 가거라” “이불 다 밟아 빨아 놓고 가거라” 하며 마치 파티에 가고 싶어하는 신데렐라에게 계모가 했듯, 그런 고약한 조건을 걸기도 했단다.
그렇게 12살 짜리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 이불 빨래하고 집안 청소하고 어린 동생을 등에 업고 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월반도 해가며 5학년까지 고집스레 학교에 다녔던 엄마는, 그 후로도 계속 태어나는 동생들과 외할머니의 매 때문에 결국 더 이상 학교를 다니지 못했단다.
“참 좋구나, 여기. 에어컨 틀어주제, 종일 책본다꼬 누가 머라 하지도 않제.” 계산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엄마가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엄마의 눈짓을 따라가 보니, 엄마보다 더 연세가 들었음직한, 은발이 멋진 할아버지 한 분이 의자에 앉아 책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얼매나 보기 좋노, 학식 있어 보이고.” “엄마도 식당 관두고 이런데 와서 시원하게 책도 읽고 그래.” “내 팔자에 무신…. 기운 남아있을 때까지는 내 벌어서 살아야지.” 그러면서도 엄마는 아쉬운 듯 서점 안을 자꾸 쳐다보았다.
난 여태 엄마와 함께 서점엘 갈 생각을 한번도 안하고 살았다. 은연중에 우리 엄마는 책 같은 건 안보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치부하고 살았던가 보다. 우리 엄마에게도 소녀적 꿈이 있었고, 배움에 대한 한이 남았다는 걸 난 알지 못했다. “엄마, 노인학교나 한글학교 다닐 생각 없어? 학비는 내가 대줄께.” 왠지 가슴이 짠해져 얘기했더니 “내 팔자에 무신 그런 호사를 할 여가가 어딨노” 하신다.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못했으니 짐도 되지 말아야 한다면서 우리 삼남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조그만 일인식당을 밤 아홉시까지 꾸려나가고 있다. 연세가 드실수록 자꾸 작달막해져가는 우리 엄마…. 지금도 학교 가는 꿈을 꾸는 우리 엄마…. 엄마, 이제 가끔 이렇게 서점에 모시고 올게요. 우리 둘이 서점에서 근사한 티타임도 갖고 바닥에 털퍽털퍽 주저앉아서 책도 읽어요.
참, 엄마. ‘몽실언니’란 책이 있는데 글자가 큼직하고 그림도 들어 있어서 읽기에 불편하지 않으실 거예요. 그 몽실언니…, 꼭 엄마 어릴 적 얘기 같아서 아마 술술 읽기 좋으실 거예요. 엄마 미안해요. 진작에 서점에 모시고 오질 못해서…, 엄마의 마음과 꿈을 알지 못해서….
서울 은평구 대조동 - 공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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