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나무가 숲을 지킨다는 말처럼 공부도 잘하지 못했고 품성이 썩 좋은 것도 아닌 못난 사람을 뽑았습니다.”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으로 지난 1월 선출된 김근상(56ㆍ바우로) 신부가 22일 서울 정동대성당에서 주교에 오른다. 김 신부가 주교 서품식에 앞서 13일 기자들과 만났다.
“교회 안의 갈등, 교회 밖의 갈등, 교회와 관련된 갈등, 교회와 관련되지 않는 갈등 등 온갖 갈등이 많은데 우리 사회가 일치와 화합, 상생을 이루고 미래의 꿈을 가꾸어 나가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성공회는 작은 교단이지만 김 신부는 오랫동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에서 실행위원, 통일위원장 등으로 일하면서 교회일치운동과 통일운동을 해 종교계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주교 서품 소감을 밝힌 뒤 성공회는 매우 관용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못 생겼든 잘 생겼든, 극우든 극좌든, 여러 색깔이 어우러진 무지개처럼 같이 가자는 것입니다. 성공회는 법으로 묶인 공동체가 아니라 자발적 신앙에 바탕을 둔 느슨한 일체감이 특징입니다.
” 김 신부는 또 ‘하느님’이나 ‘하나님’이나 어느쪽이든 상관치 않으며, 자신의 세례명이 공동번역성서로는 ‘바우로’이지만 천주교식으로 ‘바오로’라고 해도 되고 영어식으로 ‘폴(Paul)‘이라고 불러도 된다면서 “그런 것이 본질을 바꿀 수 없다”고 덧붙였다.
최근 수년간 세계성공회에서 논란이 된 동성애 사제와 여성 사제의 주교 서품 문제에 대해 김 신부는 “개인적인 견해는 없고 교회에서 합의가 되면 따라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이것이 성공회의 500년 전통이다”라고 밝혔다.
김 신부는 “동성애 사제의 주교 서품 문제가 내년 세계성공회협의회에서 결정되지만 수용 여부는 각 관구, 교구마다 자율적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김 신부는 부친(김태순)과 외조부(이원창)가 모두 성공회 신부인 성직자 집안에서 성장했다. 특히 1926년 서울 대성당 건립 후 첫 주임사제를 지낸 외조부는 6ㆍ25때 평양에서 교회를 지키다 순교했다.
이런 내력에도 불구하고 김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에 가서는 아프리카에 가서 느끼는 것과 똑같은 고통, 슬픔을 느꼈습니다. 동포애보다는 인간에 대해 느끼는 연민의 감정이었습니다.”
김 신부는 앞으로 서울교구장으로서 할 일에 대해 “호기심이 없고 관념적이고 고급화된 성공회 사제들을 미얀마나 라오스 같은 오지에 보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으로 고통받는 현실을 느끼고 우리가 가진 사치스러운 고민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다”면서 “신앙의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는 길을 찾겠다”고 말했다.
서강대 화학과를 다니다 진로를 바꿔 가톨릭대 신학부와 성공회 성미가엘신학원을 졸업하고 1980년 사제 서품을 받은 김 신부는 대학시절 연극 기획과 연출, 밴드 활동을 하기도 했다. 요즘도 노래방을 찾아 한 곡조 뽑기를 좋아하는 등 성직자 분위기를 연출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교회 내에서 ‘괴짜’로 비치기도 한다.
김 신부는 내년 1월 정년퇴임하는 박경조 주교 후임으로 서울교구장에 정식으로 취임하면 65세 정년 때까지 봉직하게 된다.
“하다가 힘들면 중간에 그만 둘 수도 있겠지만 여러분들을 실망시키는 일이 없도록 동료 성직자, 교우들과 함께 다짐하겠습니다. 약속은 못 하겠구요.” 성직자들이 풍기는 권위의식과 거리감을 김 신부에게서는 느낄 수 없다.
남경욱 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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