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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새 영진위원장엔 이런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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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새 영진위원장엔 이런 사람을

입력
2008.05.15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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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의 정치코드와 함께 함몰됐던 한국영화계의 새 선장이 나타나 곧 항해를 시작할 참이다. ‘한국영화진흥호’ 라는 배에는 다양한 선원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배가 하나 둘 기관고장을 일으키고, 파고가 높아지면서 막노동에 밥벌이는커녕 긍지가 사라진 그들은 하선을 준비하거나 이직을 검토하고 있다.

간헐적으로 동승하던 관광객도 갈지 자 행보를 하는 배와 불신과 반목만 거듭하는 선원들을 보고 혀를 찬다. 쾌적한 승선감과 비경의 풍광을 보여 주며 목적지에 닿게 해 줄 ‘믿음’ 의 선장이 필요하다.

바다는 거친데 영화계는 반목만

배에는 ‘영화같은 미래’ 를 위해 무대가(無代價)로 혹은 연봉 300만원에 선창바닥에서 궂은 일 담당하는 기술자와 창작 작가, 새 그물을 사서 바다에 던지고픈 제작자, 타이타닉 같은 중앙홀의 빨간 카펫을 밟고 싶은 배우들이 동승하고 있다.

그들을 대표하는 선장은 제발 용왕의 등극에 멸치처럼 떼 지어 해류를 타며 제물을 바칠 궁리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용궁의 의도와 무관하게 ‘존경을 먹고 사는 고집장이’ 라는 별칭을 지닌 이기를 원한다. 유길촌 전 위원장의 교훈처럼 “외부의 청탁과 압력에 구애 받지 않고 타륜(舵輪)을 잡을 사람”이어야 한다.

암초는 이미 GPS로 판독되었고, 선원들 누구나 알고 있다. 112편의 제작물 중 관객 100만명 이상이 31편, 그 중 흑자는 13편이라는 숫자가 불길하다. 극장과의 부율논쟁이 선로 결정의 대안이라고 여기는 파벌도 무섭다. 혹자는 그저 선원들끼리 망망대해 안에서 싸움이나 하지 않고 순항할 능력을 가진 선장의 자질을 주문한다. 즉 ‘영화산업의 리더’보다는 항로를 찾으며 ‘항진을 위한 결집과 구심점 역할’을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지금 ‘한국영화진흥호’는 여러 가지 고장을 앓고 있다. 합리화된 영화제작 시스템의 정착 및 활성화, 부가판권시장의 문제점 파악과 해결, 문화다양성을 위한 영화지원과 투자는 더 많은 수혜 폭을 요구한다. 질적 양적인 기획, 개발, 제작, 배급을 위한 총체적 투자조합의 결성도 시급하다.

영화법조인들의 등용과 중용으로 경영인, 투자인, 창작자를 위한 지적재산권과 저작권도 진지하게 다루어야 한다. 전국영화산업노조와의 지속적 대화와 이해의 자세도 보여야 한다. 내비게이션과 연료 주입, 적재적소의 인프라 구축 등을 통해 할리우드처럼 ‘산업으로의 영화진흥책’에 대한 설득과 논리 개발이 필요하다.

독특한 의사표현방식과 철학을 가진 영화인들을 아우르는 노력과 발품도 필요할 것이다. 정말 ‘낮은 자세’도 필요하다. 까칠하지 않고, 탐욕스럽지 않으며, 노욕을 부리지 않고, 허세를 앞세우지 않으며, 자기집단의 이익만 구치 않는 인물이 새 선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변신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출신은 중요치 않다. 슬기롭게 변신하는 연기자를 ‘명우’라 부르며 그가 등장하는 영화에는 주저 않고 지갑을 여는 것처럼.

이번엔 정말 제대로 된 선장을

마침 27회 스승의 날을 앞두고 서울시교육청 민원실에 접수된 한 청원서가 떠오른다. 영화처럼 115년 역사의 재동초등학교 재학생, 졸업생, 학부모, 지역주민 476명이 8월 정년인 교장선생님의 퇴직을 막으며 ‘임기연장 청원서’를 제출했다. 말 많은 교육계에 드문 훈훈한 사건이다.

영화계에도 전직을 따지지 않고 인간됨과 업적만으로 평가해 마지막 항해를 준비하는 선장에게 다시 항해에 나서라고 생떼 쓰는 영화인들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이런 선장을 만날 때 ‘한국영화진흥호’는 만선(滿船)이 될 것이다.

강익모 서울디지털대 엔터테인먼트 경영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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