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복구성금 마련을 위한 ‘대한민국 조각 100인전’에는 국내 조각계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대표작들이 즐비하다. 숭례문 소실 100일을 기념하는 뜻 깊은 행사지만 그 자체로도 한국 조각예술의 현주소를 한눈에 조명해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50년 넘게 돌조각에만 전념하며 차가운 돌덩이에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어온 전뢰진의 작품 ‘동경’이 우선 눈에 띈다. 예술원 회원이자 홍익대 명예교수인 작가는 기계의 도움 없이 수작업으로 대리석을 쪼고 다듬어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가득한 여인의 형상을 빚어냈다.
대리석 특유의 차갑고 도회적인 느낌 없이 되레 온화하고 포근하다. 성실한 작업 스타일로 유명한 작가답게 고전미가 두드러지는 작품. 현재 서울 신사동 청작화랑에서 7년 만의 개인전도 열리고 있다.
강희덕 고려대 미술교육과 교수의 ‘위로의 손’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숭례문 화재로 다친 국민들의 마음을 보듬는 듯한 부드러운 손길이 연상되는 작품이다. 상처 받은 사람을 위로하듯이 기도하는 두 손이 얹혀진 청동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 잘 어울린다.
기하학적 조형언어로 자연의 근본구조를 탐구해온 연제동의 유리작품 ‘메모리-07A’는 미니멀하며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인다. 타이머에 의해 불빛의 색깔이 달라지는 LED를 장착해 카멜레온처럼 시시각각 변신하는 유리의 형상이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20여년간 꾸준히 매달려온 그의 유리작업은 빛 고유의 특성을 잘 살린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 추상조각의 대부 박석원 홍익대 명예교수의 ‘적의(積意)0229’는 1990년부터 시작된 작가의 ‘적의’ 시리즈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작. 철이나 돌 조각을 나누고 쌓고 조합하는 재구성 과정에 인간의 심의를 더한 이 시리즈는 분절과 축적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반복율이 특징이다. 소재는 육중하지만 작품의 몸놀림은 새처럼 가볍다.
‘조각으로 풍경화를 그리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 양화선의 ‘산수기행-봄’에선 코끝으로 스치는 봄내음이 물씬하다. 우리네 시골의 바람부는 풍경을 브론즈로 표현한 이 작품은 양화선 특유의 서정성과 자연미를 강하게 전해준다.
가시면류관을 연상시키는 김승환 인천 가톨릭대학 교수의 ‘유기체2008-5’는 종교적인 숭고미를 강하게 풍긴다. 파동 치듯 이어지는 브론즈의 움직임이 매우 현대적이면서도 종교적 고행의 엄숙함을 느끼게 한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 중 최고가 작품이다.
음과 양의 요철처럼 두 개의 의자를 형상화한 조성묵의 ‘메신저’는 현대사회에서 권력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 고대 이래로 의자는 권력과 지위의 상징이자 자아와 세계가 만나는 명상의 자리이기도 했다. 작가는 메타포로서의 의자를 통해 자연과 문명, 안과 밖, 인간과 환경 등 여러 대립항들의 소통을 탐색하고 있다.
■ 출품 조각가 120명 명단
강희덕 고영진 고혜숙 권용철 권치규 금누리 김경민 김광우 김근배 김금희 김대성 김동옥 김동호 김민억 김방희 김상일 김선영 김성기 김성복 김성회 김수경 김수현 김승환 김 연 김영원 김왕현 김 원 김은영 김정희 김종희 김하림 김형주 김효숙 김희경 나점수 노현래 류경원 류 훈 문경수 문병두 민혜홍 박근우 박석원 박선영 박성희 박용수 박찬갑 박헌열 백인정 변숙경 서광옥 서순오 서옥재 손미경 손선형 손정은 송근배 신달호 신혜선 심병건 심영철 심인자 안병철 안재홍 안치홍 양영의 양태근 양화선 연제동 오상욱 오순미 유용환 윤진섭 이경은 이계정 이남희 이범준 이 상 이상권 이상길 이성옥 이수정 이승리 이윤석 이윤숙 이정근 이정은 이종안 이종애 임선이 임승오 임영란 임형준 장선아 장 식 장형택 전경선 전덕제 전뢰진 전용환 정국택 정기웅 정연희 정 현 조미연 조성묵 조숙의 주민선 주송열 지경수 지명순 최진호 한성수 한영호 한진섭 김진석 신동희 오형태 정영자 편승렬
박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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