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특권이라 할 낭만적 관계의 관행이 세월 따라 변화해감은 일견 자연스러운 일일 게다. 하기야 요즘 스무 살 생일엔 남자 친구로부터 세 가지 선물을 받아야 한단다. 그 목록은 남자 친구의 키스, 향수, 그리고 장미꽃 열아홉 송이. 굳이 한 송이 모자라는 이유는, 남자 친구가 열아홉 송이 꽃다발을 건네면서 “나머지 한 송이는 바로 너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 데이트보다 성 관계를 먼저
미국에서 ‘데이트’라는 표현이 연인들 사이에 서로를 탐색하면서 애정을 발전시켜가는 과정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건, 하류계급의 슬랭으로부터 연유한 것이라 한다. 곧 데이트는 1896년 시카고 출신의 작가 조지 에이데(G. Ade)가 당시의 신문 Chicago Record에 연재하던 칼럼, ‘거리, 뒷골목 이야기’에서 처음 사용한 이후 널리 애용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데이트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애용되기 시작했는지 현재로선 알 길이 없다. 1970년대 후반의 대학생으로선 당시 친구 및 선ㆍ후배들 사이에 다양한 미팅 양식과 열렬한 데이트가 성행했었음을 기억하고 있다. 어린 시절엔 주위 어른들로부터 ‘연애질은 나쁜 것’이라는 이야길 들으며 자란 세대임에도 말이다.
한데 최근의 미국 대학가에선 데이트라는 표현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대신 “후크 업”이라는 표현이 그들만의 슬랭으로 새롭게 등장했다고 한다. 여기서 후크 업이라 함은 파티에서 우연히 마주친 남녀가 눈을 맞춘 후 자연스럽게 에로틱한 관계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후크 업 커플 4명 중 1명이 첫 만남에서부터 성 관계를 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후크 업 파트너는 수시로 바뀌게 마련인데, 다행히 동일한 파트너와 자연스럽게 후크 업을 몇 차례 반복하게 되면, 그 때부터 데이트를 시작하는 것이 관례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요즘 젊은 세대는 몸을 먼저 부딪친 다음 마음을 나누는 관행을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후크 업 세대의 변명인즉, 성 관계를 갖기까지 지나치게 오래 탐색과정을 거치는 것은 낭비라는 것이다. 대신 서로를 향한 에로틱한 감정이 촉발되어 성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나면, 그때부터 진정한 의미의 정서적 유대 및 친밀성을 안정적으로 다져나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들의 강변이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낭만적 관계의 질(質) 자체가 변화화고 있음을 함의하고 있는지 여부는 아직은 불분명하다. 다만 애정을 나누는 관계조차 헌신과 영속성을 내포하는 몰입(commitment)으로부터, 이해관계에 따라 자유로이 들고 날 수 있는 네트워크의 성격을 강하게 띠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서서히 설득력을 확대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네 젊은 세대의 낭만적 행동 강령 또한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음에 필히 주목해야 할 것 같다.
■ 곧 성년의 날, 우리 20대는?
이와 관련해서 한 가지, 유럽과 미국의 경험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 유럽의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의 변화를 지극히 자연스러운 발달단계로 인정하여 그들에게 충분한 자율성을 부여하면서 더불어 자유로운 성관계에 따르는 책임의 중요함을 가르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 미국에선 젊은 세대의 행위양식을 성적 방종으로 보아 이를 엄격한 통제의 대상으로 규정함에 따라, 부모자녀 간에 팽팽한 긴장과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그 결과로 미국에선 10대 임신과 그로 인한 학업 중단 및 빈곤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반면, 유럽에선 10대 임신율 자체가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고 함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음은 물론이다. 우리네 20대, 어떻게 할 것인지? 다가오는 성년의 날(19일) 화두로 삼아봄이 어떨는지.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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