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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순조 때 고위관료 '신현'의 13년 친필일기 '성도일록'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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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순조 때 고위관료 '신현'의 13년 친필일기 '성도일록' 공개

입력
2008.05.15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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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사(丁雅士) 후상(厚祥)이 찾아왔는데 그는 승지를 지낸 약용(若鏞)의 아들이다. 그 아버지가 사옥(邪獄ㆍ신유사옥)에 걸려 숱한 세월을 귀양살이로 보냈는데 후상이 의술(醫術)에 정통하여 권세를 잡은 사람과 사귀어 마침내 죄에서 풀려 돌아오게 하였으니 가히 효(孝)라고 할 만하겠다.”

1800년대 초반인 조선 순조 때 고위직을 두루 거친 평산신씨 신현(申絢ㆍ1764~1827)이 13년 동안 쓴 일기가 공개됐다. 경기도박물관(관장 김재열)이 최근 영인본과 역주본 두 가지 형태로 펴낸 <성도일록(成都日錄)> 15권 15책은 다산 정약용이 18년간의 유배에서 풀려나게 된 내막을 기록한 위의 대목처럼 당시의 관찬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면의 정치적 상황과 사회상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신현은 강화도에서 태어났으나 벼슬을 하면서 광주 사촌에 집을 마련해 강 건너에 살던 정약용과 친분관계가 있었다. 다산이 유배지 강진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권세를 잡은 이들에게 구차하게 구명운동을 하지 말라는 글이 남아 있는데, 그 후 일이 어떻게 전개됐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일기는 크게 개인사, 공적인 근무일지, 조정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 등을 기록했다. 1821년 발생한 콜레라에 대해 “이 병은 요동에서 시작하여 점차 전염되어 왔는데 크게 치성하여 죽은 자가 날마다 천(千)을 헤아렸다”면서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이 10만명 가량 된다고 추산했는데 이는 사서의 기록과도 일치한다. 또 서북지방의 인사행정과 세금징수의 문란상을 기록, 1811년 발생한 홍경래의 난의 배경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사대부들의 생활 모습으로는 신현이 부친 신대우의 초상화를 제작하면서 당대 최고의 화가인 이명기, 김건종, 김득신 등을 불러 작업하는 과정이 기록돼 있다. 이명기는 신대우의 얼굴 부분을, 김건종과 김득신은 몸과 그 밖의 부분을 그렸다. 김건종 김득신은 정조와 순조의 어진을 그린 화가이다. 신대우는 강화학파의 선구자인 정제두의 손자사위로 그 학문을 이었다.

당시 노비들의 일과를 적어놓은 점이 특이한데 주로 편지를 전하거나 주인집 가족의 외출시에 말을 가지고 모시는 것, 물건을 사고 파는 일 등이다. 1811년에 25냥(兩)으로 여비 1명과 그에 딸린 아이 3명을 구입했고, 1812년에는 90냥으로 말 1마리를 샀다는 기록이 있어 노비의 시세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조선시대 노비의 매매가는 대략 상등마(上等馬) 1필에 해당했으나, 당시 기근이 심한데다 노동력이 없는 아이들이 딸려 있어 평균보다 적은 가격으로 매매된 듯하다.

신현은 한국현대정치사의 거목이었던 해공 신익희의 증조부로 정조 때인 1794년 급제한 뒤 세자였던 순조의 스승인 보덕(輔德)으로 두 차례 임명됐으며 성균관 대사성과 사간원 대사간, 호조참판, 이조참판 등을 지냈다.

이 일기는 신현이 평안도 성천 부사로 임명된 1808년(순조 8년) 11월부터 1821년(순조 21년) 12월까지 13년간 친필로 기록한 것으로 그동안 한번도 출판된 적이 없다고 박물관 양상훈 학예연구사는 밝혔다.

남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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