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500대 기업(포천지 선정)의 평균 수명은 고작 40~50년. 초우량 기업조차 반세기를 못 버틸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얘기다. 반면, 이웃나라 일본에는 수백년, 많게는 1,000년 이상 된 기업이 수두룩하다. 그들의 생존 비결은 무엇일까.
14일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전세계 41개국의 창업 200년이 넘은 장수기업 5,586개사 가운데 절반 이상(3,146개사)이 일본에 몰려 있다. 그 다음은 독일(837개사), 네덜란드(222개사), 프랑스(196개사) 등으로 유럽 국가들이 차지하고 있다. 200년은 고사하고 100년 이상 기업(두산, 동화약품공업)조차 2곳뿐인 한국과는 엄청난 차이다.
장수기업의 첫째 비결은 기술력이다. 578년에 설립돼 세계 최장수 기업으로 공인받은 건축회사 ‘콘고구미(金剛組)’는 백제에서 건너간 유중광(일본명 콘고 시게미츠)이 세운 회사다. 건물 겉면보다 천장이나 땅 속에 묻히는 부분에 더 비싼 자재를 쓰기로 유명한 이 회사가 지은 고베시 사찰은 1995년 대지진 때도 끄떡없었다.
나가세토메주로(1871년 창업) 공장의 반도체 제조장치는 ‘후지산 정상의 25㎝ 과녁을 100㎞ 밖에서 화살로 명중시킬 정확도’라는 찬사를 들을 정도. 장수기업의 이런 고유기술은 오랜 역사와 더해져 세계시장 점유율 1위 업체를 다수 탄생시켰고 이들의 경쟁력은 일본이 최근 10년 장기불황을 이겨내는 데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한은은 분석했다.
장수기업은 또 한눈을 팔지 않는다. 본업과 무관한 사업을 벌이거나 무리한 확장을 경계했다. 먹(墨) 장인이 1902년 창업한 구레다케(吳竹)사가 잇따라 개발한 붓펜, 융설제(골프장 눈 제거제), 자동발광표지(산길도로 길안내 표시) 등은 모두 한국에서 전래된 먹 제조술에 기초한 카본기술이 응용됐다. 주조기술을 응용, 세계 최초로 수분유지 효과가 탁월한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를 개발한 유신(勇心)주조(1854년 창업)는 지금도 일본 전통술을 착실히 생산하고 있다. 창립 300년이 넘은 후쿠다(福田)금속은 “금ㆍ은가루 가공이 본분”이라며 일본경제 버블 시기 부동산이나 주식매입 권유를 거절했다.
2,3대(代) 후를 내다보는 신용관리와 경영승계도 주효했다. 1689년 창업한 스즈키(鈴木)주조점은 지역사회와의 신뢰유지를 위해 생산량의 80%를 지역주민에 파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또 일본기업들이 경영권을 넘길 때는 혈연보다 능력을 중시해 ‘3대째는 양자(에게 넘긴다)’는 통설이 있을 정도. 실제 휴대전화 진동기능을 개발한 다나카(田中)귀금속(1885년 창업)의 현재 사장은 다나카 집안과 전혀 무관하다. 1,400여년을 이어온 콘고구미의 경영주 1대 평균 재임연수가 35년이나 되는 것도 장자 상속에 얽매이지 않은 결과라는 분석이다.
한은 정후식 부국장은 “장수기업은 수익성과 고용효과도 월등하다”며 “우리나라도 장수기업 육성을 위해 핵심기술 투자에 세제ㆍ금융지원을 하는 한편, 중소기업의 성공적인 기술 개발과 경영승계에 획기적인 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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