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촘촘히 깔린 나라에 살면서도, 나는 이 문명의 놀이터와 거리를 두고 지내왔다. 국제적으로 큰 일이 터졌을 땐 몇몇 외국 신문 사이트에 들어가 보던 시절도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그 짓도 시들해졌다. 그나마 바지런히 들어가 보는 곳이 내 전자우편함과 <프레시안> 이다. 프레시안>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주말마다 개인 블로그 몇 군데를 찾게 되었다. 예전 어느 잡지 사이트에서 한 젊은이의 글을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는데, 그가 쓴 글들을 한목에 읽고 싶어 그의 블로그를 찾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 젊은이의 블로그엔 아마도 그의 지인들일 다른 이들의 블로그가 연결돼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서넛은 내 첫 방문지만큼 흥미로웠다. 그중 하나가 노정태라는 이의 블로그(http://basil83.blogspot.com/)다.
■ 젊은 ‘무명' 블로거의 혜안
그런데 요즘은 노정태씨의 블로그를 찾을 때마다 실망하기 일쑤다. 새 글이 올라 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노정태씨는 매우 게으르거나 매우 바쁜 사람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따금씩 오르는 그의 글은, 내가 그 취지에 동의하든 회의하든, 늘 깊은 생각거리를 남긴다. 그는 최근 미국 쇠고기 파동을 두고 “광우병 논란의 양쪽 방향을 두루 살펴봐도, 우리의 ‘국민감정’은 어디까지나 농촌을 황폐화시키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는 우려를 표했는데, 이것은 사태의 정곡을 찌른 발언이다.
김영삼 정부 초기에 쌀시장 개방을 강력히 주장하던 한 ‘자유주의’ 논객은, 식량을 무기로 삼는 일은 너무나 비윤리적이어서 어떤 나라도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없을 것이라 강변한 바 있다. 2, 3차 산업이, 특히 3차 산업이 번성하는 한, 한국 농업이 설령 완전히 무너진다 해도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국제시장에서 곡물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지금,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가 윤리적으로 생각할 한국 우익세력이 휴전선 너머 동족에 대해서까지 식량을 무기로 사용하려 하고 있는 지금,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내가 노정태씨에 대해 아는(차라리 짐작하는) 것은 적다. 20대 후반 젊은이라는 것. 철학(이 아니라면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이거나 회사원이라는 것(어쩌면 학생이면서 회사원이라는 것). ‘가을이’와 ‘입동이’라는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 진보신당 당원(이 아니라면 지지자?)이라는 것. 그 또래의 ‘리버럴’한 젊은이들이 흔히 그렇듯 ‘최장집, 진중권, 우석훈 마니아’라는 것. 영어에 능하다는 것.
늘어놓고 보니 나는 그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그저 짐작일 뿐이고,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논설위원’이나 ‘대학교수’ 같은 직함을 내걸고 신문에 칼럼을 흘리는 중장년 글쟁이들 대다수보다 이 ‘무명’의 젊은이가 더 깊이 세상을 바라보고 더 단정하게 글을 쓴다는 것. 사실 노정태씨 말고도 사이버 공간 한 구석에서 혜안을 번득이는 블로거들이 많을 것이다. 제도언론의 선정성에 가려져 세상 밖으로 널리 드러나지 않을 뿐.
■ 양식이 나이에 무뎌지지 않길
노정태씨에게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더러 현학적이고 독선적이라는 것. 그러나 현학과 독선은 젊음의 특권이다. 젊을 땐, 젠 체하는 것도 아름답다. 더구나, 그보다 두 배쯤 나이를 먹었으면서도 아직 현학과 독선을 말끔히 씻어내지 못한 주제에 이런 불만을 늘어놓는 것은 도리도 아닐 것이다.
재능은 실존의 작은 부분이면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다. 노정태씨가 제 재능을, 나이 들어서도 지금처럼, 자신보다 재능이 모자란 사람들을 옹호하는 데 썼으면 좋겠다. 윤리적 감수성의 가장 큰 적은 나이다.
재능과 윤리적 감수성이 나보다 훨씬 뛰어난 한 세대 아래 젊은이를 보면, 문득 내 해묵은 비관주의를 벗어 던지고 싶다. 앞으로 세상은 더 나아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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