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의류용 원단을 수출하는 중소기업인 신화플러스는 지난해 12월 거래 은행 지점 직원의 권유로 통화옵션에 가입했다. 환율이 890~935원 사이에서 움직이면 약정환율(935원)과의 차이만큼 이익을 볼 수 있는 상품이었다. 몇 번 거절했지만 2008년 평균 환율을 910원 정도로 예상했던 터였고, 은행 직원도 “환율이 전망대로만 가면 이익이 날 수 밖에 없는 상품”이라고 권하는 탓에 계약을 결심했다.
올해 2월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후 원ㆍ달러 환율이 상승하기 시작해 1,000원을 훌쩍 넘어버리자 ‘이익이 날 수 밖에 없을 것 같던’ 이 상품은 손실로 뒤바뀌었다. 4월 말까지 이 회사가 입은 손해는 5,000여만원. 지난해 매출액이 70억원, 영업이익이 2억원 가량이었던 이 업체의 올해 통화옵션 관련 손실액은 5억~6억원으로 추산된다. 이 회사 자금담당 이사는 “우리 책임도 있으니 여태까지 입은 손실은 감수하겠다. 제발 이제부터의 계약은 철회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환율 상승으로 수출 기업들의 이익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던 올해 1분기 실적 발표 결과, 오히려 통화옵션 관련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고 공시한 기업들이 급증했다. 이날 알루미늄판재 수출업체 대호에이엘이 약 35억원의 통화옵션 및 선도거래 관련 손실을 입었다고 공시했고, 통신장비업체 KMW는 총 61억원의 평가손실을 기록중이다.
자동조제기 생산업체 JVM도 3월말 현재 자기자본의 17.7%에 해당하는 137억원의 통화옵션 평가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철강설비업체 IDH는 자기자본의 42%에 달하는 123억원의 평가손실이 발생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안에 통화옵션 손실을 견디지 못하고 부도 나는 기업이 속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 업체들의 손실 영향은 개별기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환율에도 영향을 미친다. 환율이 1,040원대로 치솟은 이상 거의 모든 계약업체들은 약정환율의 배 이상의 달러를 팔아야 하고, 보유 달러가 부족할 경우 시장에서 달러를 사야 하기 때문. 고유가 때문에 달러 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통화옵션 관련 달러 수요까지 합세할 경우 다시 환율 상승을 부르고, 이 때문에 더 큰 통화옵션 손실을 입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업체들이 가입한 파생상품인 ‘KIKO(Knock-In, Knock-Out) 통화옵션’은 계약 기간 동안 매달 혹은 2개월마다 사전에 정해진 금액의 달러를 약정환율에 파는 조건이다. 환율이 약정환율 밑에서 움직일 경우 그 차액만큼 기업이 이익을 얻지만 만약 환율이 상한선을 벗어나면 정해진 달러의 2배를 약정환율에 팔아야 하기 때문에 환율 차이의 2배만큼 손해를 입게 된다.
2005년부터 국내에 이 상품이 본격적으로 소개된 후 지난해 중반까지 환율이 꾸준하게 떨어지면서 이 상품을 계약한 많은 기업들이 환율 변동 위험을 예방했을 뿐 아니라 짭짤한 수익까지 얻었다. 그러자 지난해 말 시중은행들은 중소기업에도 이 상품을 환 헤지용으로 권장했고, 기업들도 환율이 큰 폭으로 오를 것을 전혀 예상 못한 채 가입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은행들이 기업들에게 ‘s기(사기를 지칭하는 말)’를 친 것이라고 격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중소기업의 고통이 가중되자 금융감독원이 이들 업체로부터 제기된 민원을 검토하고 해당 은행을 조사하는 등 정부가 나서고 있지만 사실 두 기업 간의 계약이라 현재는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 기업들은 은행이 위험보다 이익을 강조했다고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리스크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가입한 것은 아니라고 인정하고 있다. 그동안 통화옵션으로 이익을 본 기업들도 있는데, 손해난 기업이 발생하자 갑자기 정부가 나서서 도와줘야 한다는 주장은 명분이 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영세 중소기업의 경우 통화옵션 손해만으로 부도 위기까지 갈 가능성도 있는 만큼, 현재 달러 가뭄으로 은행들이 신규 대출을 중단한 달러대출 등을 이들 기업에 선별적으로 해 주는 등의 지원은 해 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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