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한반도 상황변화에 전혀 실용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현 정부는 상호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융통성 있게 남북관계를 풀어가겠다는 입장을 출범 초에 밝혔지만 상호주의만 팽배한 채 유연성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러다 보니 정부가 대북협력의 전제로 삼았던 북한 핵 문제의 진전이 초읽기에 들어갔지만 우리측은 남북대화 단절로 북측을 움직일만한 아무런 지렛대를 갖지 못하는 실정이다.
통일부 대변인은 13일 브리핑에서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한 지원은 실무적으로 검토하고 있지 않으며 북한이 지원을 요청할 경우에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의 식량위기에 따른 대규모 아사(餓死) 가능성에 대한 국제기구의 경고와 미측의 50만 톤 인도적 식량지원이 임박했는데도 우리측은 기존 입장을 계속 고집하는 것이다.
정부의 이런 자세는 “인도적 지원이라도 대규모라면, 그에 상응한 북측의 인도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방침이 배경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측이 먼저 요청을 하면 우리측도 인도적 문제에 대한 요구를 하면서 지원하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북핵 문제의 급속한 진전흐름을 감안하면 정부의 자세가 지나치게 경직돼 있고 상황판단이 안이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무엇보다 핵 폐기 단계 협상이 시작되고 북미 관계정상화가 본격 논의될 경우 남북 경색국면이 계속된다면 우리 정부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도적 역할을 상실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제3자의 입장에서 북미교섭만 지켜보다 경수로 지원 등 협상결과에 대한 책임만을 떠안은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의 상황이 재연될 수도 있다.
이러한 한반도 상황변화를 고려할 때 북한의 식량위기는 남북관계를 풀 매개고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방치하는 분위기다. 노무현정부도 남북관계 경색 때 수해 지원을 남북대화의 기회로 이용한 바 있다. ‘경사에는 초청을 받아야 가지만 애사(哀事)에는 그런 게 없다’는 논리였다. 더욱이 유엔도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는 조건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북한의 요청이 없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 하고 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현 상황에서는 우리가 한반도 문제에서 소외될 여지가 커졌다”며 “식량지원 협의 제의 등 대승적이고도 과감한 정면돌파로 경색 국면을 풀어나가는 능동적 대응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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