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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고유가에 둔감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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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고유가에 둔감한 사회

입력
2008.05.14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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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석유전문가 스티븐 리브는 2004년 초 <고유가시대의 투자전략(the oil factor)> 이라는 책에서 “10년 후 또는 그보다 더 이른 시기 안에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당시 유가는 배럴당 30달러 수준이었다. 물론 그의 예측에 동의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100달러 사나이’라는 다소 놀림투의 별명만 주어졌다.

그는 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선이던 2년 후 새 저서 <오일의 경제학(the coming economic collapse)> 에서 “이제 유가 100달러는 너무 낮춰 잡은 전망치로 보인다. 2010년이 되면 과거 호시절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면서 유가 200달러 시대를 예고했다.

현재 국제유가는 배럴당 126달러(WTI 기준)로, 1년 전(배럴당 63달러)에 비해 정확히 두 배 올랐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연일 최고가 경신 행진이다.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국제유가가 6개월 내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 향후 2년 내 20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배럴당 유가 100달러 시대가 오면 지구 문명이 곧 붕괴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던 게 불과 몇 년 전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도 우리 소비자들은 아낌없이 기름을 써댄다. 국내 승용차 시장에서 배기량 2,000㏄ 이상 대형차 점유율은 30% 선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4.3%에 비해 7배나 치솟았다. 휘발유 값은 1년 전에 비해 ℓ당 300원 가까이 올랐지만, 휘발유 소비가 줄고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정부도 다를 게 없다. 2003년 11월 관용차 관리규정을 자율화한 이후 정부 고위관리와 지방자치단체장의 차량은 계속 커지고 있다. 정부 업무용 차량 중 경차 비중 또한 1% 미만이다. 정부가 올들어 내놓은 고유가 대책도 한가하기 그지없다. 소비자들의 이기심에 영합해 3월부터 휘발유와 경유 등의 유류세 탄력세율을 10% 내렸지만, 지속적인 유가 상승 탓에 그 효과는 금세 상쇄되고 말았다. 이어 가정집의 실내 냉ㆍ난방 온도를 규제하겠다는 실효성 없는 정책을 내놓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맡자 없던 일로 한 게 고작이다.

지구상에 석유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석유 수요가 장기적으로 얼마나 늘어날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허나 분명한 것은 지구상의 화석연료가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에너지 수요는 계속 늘고 있으며, 석유를 뽑아내는 일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지금보다 석유 소비를 줄이고, 석유 자원이 고갈되기 전에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길 뿐이다. 당연히 정부 대책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미국 정부는 2020년까지 자동차 평균 연비를 2007년 대비 40% 높이지 못한 업체에 고액의 과태료를 물리기로 했다. 프랑스는 올해 1월부터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소형차 수준으로 낮춘 차량에 대해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덕분에 올들어 미국과 프랑스의 소형차 판매는 전년 동기보다 각각 8.7%, 10.9% 늘어났다.

우리도 소비자들 요구에 끌려 다닐 게 아니라, 에너지 효율이 높은 주택과 자동차 개발에 정책적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유류세 인하에서 드러났듯, 인위적인 유가 억제 정책은 에너지 소비를 조장하는 역효과만 낳기 쉽다.

문제는 대형차의 안락함에 길들여진 높으신 분들의 권위의식이다. 이들이 먼저 관용차를 기름 먹는 하마(에쿠스)에서 경차로 바꾸고, 사무실의 대형 냉난방기를 선풍기로 교체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과 기업이 공감하는 에너지 대책이 나올 수 있다.

고재학 경제부 차장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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