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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살리기, 기업이 나서라] <2부> 한국기업 무엇을 해야 하나 ② 삼성과 현대가 손 잡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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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살리기, 기업이 나서라] <2부> 한국기업 무엇을 해야 하나 ② 삼성과 현대가 손 잡는다면

입력
2008.05.14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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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2001년 3월, 이건희 당시 삼성 회장과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이 손을 잡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그룹 총수의 개별회동은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삼성 계열사 사장단의 현대차(에쿠스) 구입, 현대의 법인카드로 삼성카드 이용 등 서로의 화합을 추켜세우는 덕담이 오갔다. “어려워지는 나라경제를 위해 더 큰 협력을 하자”는 대승적인 합의도 일궜다.

日 비슷한 시기, 일본에선 닛산(자동차)과 NEC(전자)가 손을 잡았다.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자동차용 차세대 전지(리튬이온 배터리)를 공동으로 개발하자는 것. 당시로선 시대를 앞서간 개발 주제였다. 티격태격 다툼도 많았다. 오직 “협력하지 않으면 국가도, 미래도 없다”는 절실함이 두 기업을 결속시켰다.

7년이 흘렀다. 삼성과 현대의 ‘더 큰 협력’은 아직까지 실체가 없다. 물론 각자 영역에서 덩치를 키우고 실적을 쌓아 국가경제에 이바지한건 평가 받을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 전자업계와 자동차업계의 협력은 필수”(구본관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라는 조언은 아직 이상에 가깝다.

반면 닛산과 NEC는 차세대 전지 공동개발의 성과를 차곡차곡 쌓았다. 지난해엔 합작회사(닛산 50%, NEC 42% 출자)를 만들었고, 내년 4월엔 세계 자동차 시장에 양산(量産) 제품을 팔겠다는 구체적인 구상을 밝혔다. 협력의 파급력은 이토록 무섭다.

적과 동침한 일본 기업, 적을 누르다

기업간 협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추구하는 ‘수직적 협력’이 주로 거론된다. 우리나라 대기업도 수직적 협력에 초점을 맞춰 부족하나마 개선책을 찾고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비슷한 몸집의 기업들이 뭉치는 ‘수평적 협력’의 중요성은 간과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제는 수평협력의 시대다. 전문가들은 수직적 협력이 ‘안정’을 추구한다면 수평협력은 ‘성장 및 시너지’를 창출한다고 지적한다. 대기업간 수평협력이 이뤄져야 우리 경제가 한단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21세기 ‘빅뱅’으로 불리는 일본 기업의 제휴전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9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겪고 난 일본의 대기업들은 심각한 생존의 위기에 직면했다. 경쟁국의 추격은 턱밑까지 다다랐는데 기업은 개발ㆍ제조ㆍ판매를 제각각 추진했고 연구개발(R&D) 리스크 증가, 투자규모 거대화 등 불필요한 자국 내 과당경쟁까지 감수해야 했다.

“변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다급함은 ‘열린 수평협력의 장’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자사의 이익과 생존 때문이라면 전통과 역사도 무시했고, 라이벌 기업집단간 협력도 다반사로 벌어졌다. 에도(江戶)막부 말기부터 앙숙이었던 미쓰이그룹과 스미토모그룹의 협력신화는 일대 충격이었다.

차세대 성장 분야를 준비한다는 차원에서 이(異)업종 대기업간 수평협력은 더욱 끈끈하다. 닛산-NEC, 도요타-파나소닉 등 자동차업계와 전자업계의 기술융합은 이미 대세다. 도요타-마쓰시다전기-가오(花王)-아사히맥주-긴키닛폰투어리스트 등의 대기업은 이업종간 대형 공동 프로젝트 ‘WiLL’을 발족시켜 고객의 미래 요구를 반영한 신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심지어는 ‘적(동종업계)과의 동침’도 불사하고 있다. LCD와 PDP는 각각 2강, 3강 등 업체간 ‘강자 연합’을 탄생시켰다. 무한 경쟁시대, 약점은 감추는 게 기업의 생리지만 캐논(원천기술)과 도시바(영상처리기술)는 서로의 약점은 보완하고 강점은 살려 차세대 디스플레이(SED) 개발에 뛰어들었다.

2001년을 전후해 극히 부진했던 일본 대기업들의 실적은 수평협력이 봇물을 이루면서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자신감도 회복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 무서운 건 수평협력을 통한 미래 대비에 있다. 적(자국 동종업계)과의 동침으로 차세대 성장 분야에 역량을 집중해 적(경쟁국 동종업계)을 누를 차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차세대 LCD 개발을 위한 업계 컨소시엄 ‘퓨쳐비전’과 나노기술 육성을 위한 기업간 협력체 ‘NBCI’는 이미 가동 중이다. 이들은 특허 공유, 공동 R&D 수행 등의 방법으로 리스크와 중복투자를 줄이고 투자비를 절감해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상호 증진하고 있다. 구본관 연구원은 “10년의 위기가 수평협력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일본 기업에게 선사했다”고 평했다.

삼성과 현대는 손 잡을 수 없나

국내 대기업도 손만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서로 경계를 풀고 사분오열하는 전열을 수평협력으로 다시금 가다듬어야 할 때다. 무엇보다 국내를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먼저 서로 손을 잡아야 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협력’이라는 가상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이업종 대기업간 기술융합이 세계적 트렌드라는 필요성엔 공감하면서도 실현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왜 그럴까. 지금의 기업문화 하에선 대체로 이런 시나리오를 예상할 수 있다.

‘현대차 엔진에 삼성전자의 컴퓨터 기술을 장착한다고 치자. 당장 현대차의 연구인력이 “우리가 삼성보다 못한 기술이 뭐가 있느냐”며 팔팔 뛴다. 차세대 기술을 공동개발(기술융합)하자는 논의는 위부터 막힌다.

과연 누가 주도권을 쥐고 기술을 개발하느냐가 도마에 오른다. 일본처럼 자동차가 우위에 서야 한다(현대차), 국내 1등 기업이 끌고 가야 한다(삼성전자)는 지루한 토론이 이어진다. 결국 어느 한쪽이 국수주의 논란을 끌어들이고 슬그머니 외국 기업과 협력을 추진하면서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수평협력은 무산된다.’

비관적인 가정이지만 반면교사는 될 수 있다. 먼저 중재자의 필요성이다. 김주훈 연구원은 “일본도 수평협력 초기에 잡음이 끊이지 않았지만 정부가 막후에서 보이지 않는 조정을 해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퓨쳐비전과 NBCI 역시 일본 정부의 작품이라는 게 정설이다.

협력은 기업이 하지만 실질적인 조율은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규제 완화와 기술유출 대응책 마련, 대외적으로 자국기업 이익 대변, 디스플레이 연료전지 등 차세대 성장산업에 대한 신속한 정책 결정도 정부의 몫이다.

배타적인 기업문화와 상호 불신의 분위기도 바뀌어야 한다. 복득규 수석연구원은 “기득권에 익숙한 문화와 그룹 내 계열사간 협력조차 막는 근시안적 경영이 기업간 수평협력을 통한 시너지 및 새로운 경제원천 창출 능력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수평협력에 대한 국내 연구성과도 미미하다. 그만큼 절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대기업간, 중소기업간 수평협력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며 “위기를 기회로 삼은 일본의 대기업이나 오랜 역사를 통해 수평협력을 뿌리내린 유럽의 중소기업처럼 우리 기업도 협력의 장을 착실히 마련해야 미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과 현대는 경쟁관계가 아니다. 손잡는다고 얻었으면 얻었지, 잃을 것은 하나도 없다. 자존심이나 기득권이 협력을 가로막는다면, 소도 웃을 일이다. 한국을 상징하는 두 기업, 삼성과 현대가 손 잡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고찬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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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LG '디스플레이 도원결의' 이후

‘디스플레이 왕국’ 한국은 최근 몇 년 동안 위기였다. 일본의 부활, 대만의 맹추격 때문이다. 세계 1위(삼성)와 2위(LG)의 막강한 전력을 지녔지만 디스플레이 삼국 경쟁에서 일본과 대만의 협공을 받으면서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할 처지였다.

일본과 대만은 수평협력을 바탕으로 한 이른바 ‘애국전선’으로 우리를 압박했다. 일본은 2004년 샤프-히타치-엡슨 등 20여 업체가 참여한 차세대 LCD 공동 연구개발(R&D) 컨소시엄 ‘퓨처비전’을 탄생시켰다.

철저한 자국 중심의 수평협력을 표방, 당시 삼성전자와 협력을 했던 소니는 프로젝트에서 제외했다. 소니는 실적부진에 시달렸고 최근 삼성과의 관계를 정리했다. 대만은 자국 업체끼리 패널교차 구매를 일반화하면서 수평협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간 협력은 국수주의라는 우려는 해묵은 논쟁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등을 돌린 채 수직 계열화에만 몰두했다. 수직적 협력(대-중소기업)에 초점을 맞췄지만 대기업간 양분 구조(삼성-LG)에선 한계가 있었다. 협력 대상은 해외에서만 찾았다. 삼성과 LG는 2000년 이후 외국 기업과 80여건의 전략적 제휴를 맺었지만 정작 두 기업간엔 단 한건도 협력하지 않았다.

돌파구는 ‘지피’(知彼)에서 찾았다. 일본처럼 ‘대-대기업 협력’(수평협력)만이 업계 전체가 살 길이란 인식이 확산됐다. 그러나 서로를 적으로 여기던 관행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숱한 우여곡절과 신경전을 겪은 뒤에야 삼성(삼성전자, 삼성SDI)과 LG(LG디스플레이, LG전자)는 지난해 5월 드디어 손을 맞잡았다. 바로 현대판 ‘도원결의’로 불리는 디스플레이산업협회의 탄생이다.

국내 대기업의 수평협력이 거의 전무했던 터라 기대도 크고, 목표도 원대했다. 협회는 아예 ‘상생협력위원회’까지 만들어 ▦패널 교차구매 ▦수직계열화 타파 ▦표준화 ▦공동 R&D 등의 실천과제도 내놓았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성과는 여전히 걸음마도 못 뗀 단계다. 협력의 기본인 패널 교차구매는 ‘한다, 안 한다’ 말만 무성할 뿐이다. 관련 업체들이 눈치를 보면서 수직계열화 타파도 진전이 없다. 미래의 먹거리를 준비하는 R&D 주제(디지털 노광기)는 삼성과 LG의 협력은 고사하고 계열사간(삼성전자-삼성SDI) 협력도 지지부진 하다는 평이다.

업계 최초란 수식어를 단 합의만 있을 뿐 정작 실천은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대기업간 수평협력을 유도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는 회의적인 반응도 나오고 있다. 복득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참 위기 때는 협력의 필요성에 공감했다가도 막상 업황이 좋아지면 각자 갈 길을 찾는 게 우리 기업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수평협력을 포기할 순 없다. 미래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한 대전제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차세대 반도체 메모리 공동개발이라는 수평협력 계획도 잡혀있다.

김영주 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디스플레이에서 시작된 삼성-LG의 수평협력이 다른 대기업으로, 그리고 다른 산업으로 계속해서 투영돼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업계 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이해와 양보를 통해 의미 있는 첫걸음을 떼야 할 시점이다.

고찬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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