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인플루엔자(AI)를 잠재울 묘수는 없었다. 9일 당정협의는 내용보다는 형식에 방점을 찍은 듯 하다. 정부가 내놓은 ▦AI 방역의 사각지대로 밝혀진 재래시장에서의 닭ㆍ오리 자가도축 금지 등 유통관리 강화 ▦피해 축산농가ㆍ업체 지원 등의 대책은 전혀 새로울 게 없다.
방역당국이 AI바이러스가 방역망을 뚫고 빠져나가는 데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게 정부가 이런 대책을 쓰지 않아서가 아니다. 당정은 AI에 대한 심리적 불안을 진정시키고자 했겠지만, 방역당국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가시지 않는 한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확대로 불거진 광우병 위험 논란에다 유전자변형(GMO) 옥수수 도입, 그리고 AI 공포까지 겹치며, 요즘만큼 식탁 불안이 높은 적은 없었다. 축산업계도 위기를 호소하고 있다. 광우병 논란이 불거지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하락하는 등 여론이 악화한 가운데, AI가 불을 지피기 시작한 셈이다. 당정이 머리를 맞댄 것도 AI로 인한 추가 여론 악화를 진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6일 서울 광진구청의 AI발생 소식이 알려진 뒤 닭, 오리에 대한 소비심리도 급격히 얼어붙어 축산농가가 받는 타격도 심각해지고 있다.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에서는 AI 발생 이후 닭고기 판매가 지난해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는데, 서울 발생 이후 감소세는 더욱 가파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달 소비자패널 464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5명 중 3명은 닭고기를 소비하지 않거나 줄이겠다고 답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허덕 연구위원은 “AI가 발생할 경우 양계산물 가격 회복에는 마지막 발생 시점에서 1개월, 심리적 불안에서 회복되는 기간은 최소 3개월이 걸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AI청정지역이었던 서울과 강원 지역에까지 사람에게 감염 우려가 큰 고병원성 AI바이러스가 침투하면서 AI공포는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다. 지난달 1일 전북 김제시 용지면의 닭농장에서 첫 발생한 AI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확산 일로에 있다. 9일 현재 퍼져나간 전국 시군은 13개에 달한다.
농림수산식품부 등 방역당국의 실책이 사고를 키운 건 분명하다. AI발생 초기부터 방역망은 수시로 뚫리고 있다. 이동통제선을 뚫고 AI감염 가능성이 있는 닭,오리가 거래됐고, 방역당국이 관리하기 어려운 재래시장을 통해서 급속도로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방역당국이 이번 AI발생 초기에 살처분 범위를 축소하는 등 방역체계에 허점이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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