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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수영 시인 未발표 시·일기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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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수영 시인 未발표 시·일기 공개

입력
2008.05.13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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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내 이름을 부르지 마시고/ 나를 찾지 마세요// 모-든 작의(作意)와 의지가 수포로 돌아가는 속에 나는 삽니다// 나의 허탈하고 황막한 생활에도 한 떨기 꽃이 있다면/ 어머니/ 나에게도 정말 꽃이 있습니까" ('꽃'에서)

올해 40주기를 맞는 김수영(1921~1968ㆍ사진) 시인의 시 15편과 일기 30여 편을 비롯한 미발표 원고가 대거 공개됐다. 계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실릴 이번 원고들은 1954년1월~1961년에 쓰여진 것들로, 부인 김현경씨가 갖고 있던 유고더미 중 시인의 메모장ㆍ공책 10권에서 대부분 발견됐다. 유고를 검토한 김명인 인하대 교수는 "10여 권엔 일기, 시 초고, 소설ㆍ수필을 위한 메모, 영문작품 발췌분 등이 포함돼 있다"면서 "김수영 시와 사유가 날것 그대로 소용돌이치는 귀중한 문학사적 자료"로 평가했다.

시 15편 중 12편은 메모장ㆍ공책에 쓰여진 초고 형태로, '김일성만세' '연꽃'과 제목 없는 한 편은 부인 김씨가 원고지에 청서한 형태로 발견됐다. 대부분 50년대에 작성됐고, '김일성만세' '연꽃'은 60, 61년에 각각 쓰여졌다. 54년 11월 만33세 생일날 일기 끝부분에 실린 '꽃'은 '맑게만 살려는' 바람과 '허탈하고 황막한 생활' 사이에서의 고뇌를 드러냈고, 같은 해 쓰여진 '탁구'에선 테이블을 왕복하는 탁구공이 '왔다가 가고 갔다가 다시 오는 무수한 피비린 냄새의 되풀이'로 표현되고 있다. 생활이 얼마간 안정된 55년 이후 쓰여진 시는 삶에 대해 한결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4ㆍ19혁명을 겪고 쓴 두 편엔 강한 사회적 메시지가 담겼다. 금기어를 과감히 발설한 '김일성만세'는 잡지 게재를 추진하다 좌절을 겪었다는 시인의 산문을 통해 존재가 알려졌다가 이번에 온전한 형태로 발견됐다. '연꽃'에는 '긴장하지 말라구요/ 사회주의 동지들'이란 시구가 거듭 나오면서 혁명 정신이 약화되는 상황에 대한 시인의 인식이 표출된다. 김 교수는 "미발표시들은 대체로 김수영의 시기별 작풍에 부합하지만, 4ㆍ19 직후 시들은 당시 김수영 시가 앙양된 시대정신을 잘 담아내지 못했다는 기존 평가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번에 발견된 일기엔 시인이 기존에 알려진 미완성 소설 <의용군> 외에도 다른 소설들을 구상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동료 문인에 대한 평가, 여성관 등을 담은 일기글도 있어 그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김수영 문학의 온전한 복원을 위해 새로 발견된 작품들이 기존 전집에 속히 포함돼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시인의 여동생 김수명씨가 보유한 유고를 토대로 시와 산문으로 구분된 두 권짜리 <김수영 전집> 을 내고 있는 민음사의 장은수 대표는 이번 미발표작을 반영한 전집 개정판 출간을 추진 중이라면서도 초고 형태로 발견된 시를 완성작으로 볼지에 대해선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장 대표는 "김수영은 생전 토씨 하나에도 예민할 만큼 작품 완성도를 따졌으며, 일단 작품이 완성되면 발표 공간을 찾는데 정력을 쏟았던 작가"라면서 "비망록 속 시 초고들은 시 전집에 넣는 대신 쓰여진 꼴 그대로 산문집에 싣는 것이 온당하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연꽃

종이를 짤라내듯

긴장하지 말라구요

긴장하지 말라구요

사회주의 동지들

연꽃이 있지 않어

두통(頭痛)이 있지 않어

흙이 있지 않어

사랑이 있지 않어

뚜껑을 열어제치듯

긴장하지 말라구요

긴장하지 말라구요

사회주의 동지들

형제가 있지 않어

아주머니가 있지 않어

아들이 있지 않어

벌레와 같이

눈을 뜨고 보라구요

아무것도 안 보이는

긴장하지 말라구요

내가 겨우 보이는

긴장하지 말라구요

긴장하지 말라구요

사회주의 동지들

사랑이 있지 않어

작란이 있지 않어

냄새가 있지 않어

해골이 있지 않어

*1961년 3월 작성, 발표 여부 불분명

이훈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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