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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중고차 드림팀' 딜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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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중고차 드림팀' 딜러들

입력
2008.05.13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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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산 차가 시동이 안 걸려. 주행거리가 1만㎞도 안 되는데, 당신이 고장 난 차를 속여 팔아서 이렇게 된 거 아냐. 순 사기꾼이야, 당장 보상하라고!” 수화기 너머 잔뜩 화난 목소리는 대꾸할 틈도 주지 않는다. ‘검사도 마쳤고, 팔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베테랑 중고차 딜러 김순화(44ㆍ여)씨는 숨이 턱 막혔다. 겨우 달랜 후 보험회사를 통해 수습방법을 알아보는 찰나 문자메시지가 슬그머니 날아왔다. 그 고객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기어를 잘못 놓았어요. 시동 잘 걸립니다. ;’ 어이가 없어 눈물이 핑 돈다.

중고차 딜러에겐 흔한 일이다. ‘중매는 잘해야 술이 석잔, 못하면 뺨이 석대’라고 하지만 중고차 딜러는 보통 뺨을 맞기 십상이다. 흠 없는 처녀총각 맺어주는 일도 쉽지 않은데 소박맞은(?) 차의 재혼을 주선하는 일이니 애초 흥정이 어렵다.

변치 않는 세상의 편견도 똬리를 틀고 있다. 중고차 시장도 세월 따라 공정 투명해졌다지만 중고차 딜러에게 드리운 ‘바가지, 사기’라는 선입견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누구보다 중고차를 사본 사람은 안다. 마땅한 이유도 없이 뭔가 속는 듯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는 것을.

중고차 구입 희망자도 거부감과 불신만 얻는다. 인터넷과 매매단지를 꼼꼼히 뒤져보지만 가격은 저렴한데 실제 차가 존재하지도 않는다(허위 혹은 미끼 매물)거나, 금전 및 정신적 피해만 받았다(사기 매매)거나 등의 설왕설래 투성이다. 이러니 중고차 구입 후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책임은 온전히 딜러의 몫으로 떠넘겨질 수밖에 없다.

정작 중고차 딜러들은 어떨까. 그들도 어엿한 생활인일 텐데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이 달가울 리 없다. 서울의 대표적인 중고차 매매 단지인 가양단지(중고차 7,000여대)에서 일하는 중고차 딜러 2명을 만났다. 이들은 ‘차보다 자신의 이름을 판다’는 모토 아래 뭉친 중고차드림팀(moonmotor.net) 소속이다.

이명균(43)씨는 5년 전 사업(건설업)을 정리했다. 수중에 있던 화물차 몇 대를 중고차 시장에 처분했던 게 인연이 됐다. 그러나 6개월동안 한대도 못 팔았다. 그는 “중고차 딜러는 진입장벽이 낮아 시작은 쉽지만 차가 안 팔리면 3개월 만에 접는 게 보통”이라고 설명했다.

오기로 버티자 기회가 왔다. LPG겸용 카니발을 팔고 수수료 25만원을 받았다. 첫 수입이었다. 웬걸 20일 뒤에 “엔진 피스톤이 깨져 견적만 300만원”이라는 고객의 연락을 받았다. 이씨는 “차량 원 주인의 책임으로 떠밀면 그만이었지만 도의상 그렇게 할 수가 없어 전액 배상했다”고 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대로 하지 않으면 욕만 먹고 손해만 볼 것 같았다. 그 뒤 판매할 차량은 꼭 정비센터에 가서 꼼꼼히 뜯어봤다. 고객에게 호감을 주는 건 말쑥한 정장이겠지만 그는 늘 작업복 차림이다. “언제라도 차 밑으로 들어갈 준비”라고 했다.

김순화씨는 여성에겐 ‘거칠고 험한’ 중고차 시장에서 10년 가까이 살아 남았다. 비결은 입장 바꾸기. 그는 고객을 대할 때 늘 ‘친척이나 가족에게 소개해도 될만한 차인가’를 따져본다. 확신이 없으면 아무리 마진이 많이 남는 차라도 권하지 않는다. 무리해서 차를 팔면 꼭 자신이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을 오랜 경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들 딜러의 공통점은 중고차를 판 뒤에도 고객과의 관계를 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브레이크등이 꺼졌다” “창문이 이상하다” “선팅(틴팅)이 살짝 벗겨졌다” “배터리가 나갔다” 등 온갖 자잘한 불만과 요구사항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심지어 차 상태를 확인하기위해 지방출장도 마다치 않는다.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고 택한 신뢰와 만족은 다음 고객을 소개 받는 밑거름이 돼 결국 이득으로 돌아온다는 게 이들의 지론이다. “새 차 같다”며 선물을 보내오는 고객, 직접 딜러를 만나지도 차를 보지도 않고 구입하는 사람도 있다. 이씨는 “일부 중고차 딜러는 차 판매 뒤엔 ‘법대로 하라’(2005년 외부기관에 의한 중고차 성능점검 의무화로 딜러의 면책 범위 확대)며 고객의 전화에 응대를 안 하는데, 짧은 생각”이라고 했다.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높다. “보험과 달리 업적 스트레스가 없고 주부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김씨), “자기관리만 잘하면 속 편하게 웬만한 기업 부장급 수입(8,000만원)을 누릴 수 있다”(이씨)고 했다. 이들은 중고차 판매 건당 5만원씩(+중고차드림팀 1만5,000원) 교통사고 유자녀를 돕는 녹색교통연합에 기부도 하고 있다.

이들이 속한 중고차드림팀은 2004년 혼탁한 업계관행과 딜러에 대한 편견을 깨자는 취지로 출범했다. 전국을 누비며 중고차 무료감정을 해오던 홍순문(49) 대표가 주요 중고차 단지의 믿을만한 딜러만 모았다. 문제가 있는 딜?湧?자연 정리돼 현재 14명이다.

홍 대표는 “매를 맞아도 제대로 팔아야 한다는 생각에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는 구입후기 게시판도 열었다”며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자질구레한 불만이라도 도의상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들은 자동차 딜러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못내 섭섭하다. 업계의 그릇된 관행도 변해야 하지만 소비자의 인식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싸고 좋은 중고차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있지도 않는 미끼 매물, 허황된 인터넷 광고에 현혹되면 잘못 고를 확률이 높다”며 “가격이나 성능보다 좋은 딜러를 먼저 찾으라”고 조언했다. 이씨도 “판매에만 급급했던 예전과 달리 자신의 차를 고르듯 신경 써주고, 사고 유무나 차량상태에 대해 솔직히 얘기하는 양심적인 딜러가 많이 늘었다”고 덧붙였다.

■중고차 딜러의 자기 견적서

-연식: 3개월 안에 정착하지 못하면 자연도태

-주행실적: 5년 이상이면 베테랑

-연비: 월 평균 10대 정도 판매

-가격: 수수료(차 값 500만원 이하 10만원, 500만원 이상 2.2%) 및

자기차 판매(매매 차익+수수료) 수입

-사고경력: 고객 불만 해결에 따른 금전적 손해, 자기차 판매 부진으로 인한 손실

-특징: 능력급, 자유로운 시간 안배, 눈치 볼일 없음, 업무 스트레스 적음

-옵션: 철저한 자기관리, 친절한 고객 응대 및 신뢰 장착

-징크스: 친한 사람에게 차를 팔면 꼭 문제가 생긴다

-조언: 차도 없으면서 저렴한 가격으로 유혹하는 미끼 매물에 속지말자

차 번호를 알려주지 않으면 대형사고 차량이나 미끼 매물이다

비오는 날은 피하라(습기 때문에 차량 소음이 사라진다)

가급적 평일 오후를 이용하라(휴일엔 좋은 차를 놓치기 쉽다)

연식이나 주행거리보다 소모품 상태를 따져라(구입 후 비용절감이 우선)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딜러가 낫다

아무리 좋은 중고차라도 초기 수리비는 미리 염두에 둬야 한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사진=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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