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을 이렇게 많이 치다니 나 자신도 놀라고 있다.”
올시즌 프로야구 용병 16명 가운데 최고로 손꼽히는 한화 중견수 덕 클락(32). 그는 “야구란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도 있다”며 자신을 한껏 낮췄다. 클락은 12일 현재 홈런(12개) 타점(33점) 득점(42점) 장타율(0.660) 1위를 달리면서 타율 3할2푼(11위), 도루 12개(5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마디로 군계일학이다. 6연승을 달리던 지난 11일 대전 LG전에 앞서 ‘코리안 드림’을 일구고 있는 클락을 만났다.
생물 선생님 클락 “한국에서 유종의 미 거두겠다”
클락은 지난 94년 매사추세츠 암허스트 대학에 야구가 아닌 미식축구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대학 시절 미식축구와 야구에서 모두 손꼽히는 스타였지만 졸업할 때는 야구를 선택했다. 생물학을 전공한 클락은 미국에서 뛸 때 비시즌에는 고향 매사추세츠로 돌아가 기간제 교사로 일했다.
생물 선생님 출신의 클락은 “한국야구에서 슈퍼스타가 돼서 야구인생의 꽃을 피우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클락은 200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그토록 바라던 빅리거가 됐지만 이듬해까지 고작 14경기를 뛰는데 그쳤다. 프로 선수로 뛸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아는 클락은 한국 무대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겠다는 각오다.
성실이 주무기, 선구안이 특기
한화 김인식 감독은 “클락의 가장 큰 장점은 성실성이다”고 손꼽았다. 타격이 안 되면 주루로, 주루가 되지 않는다면 수비로라도 팀 승리를 위해 뛰겠다는 마음가짐이 남다르다. 클락은 지난 주초 부산 롯데전에서는 기습 번트를 대고 1루에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외국인 선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홈런 타자는 삼진을 많이 당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김 감독은 “클락은 특히 선구안이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나쁜 공은 치지 않고 스트라이크를 노려 치니까 타율도 높고 홈런도 많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클락은 올시즌 171타석에서 삼진을 17개 밖에 당하지 않았다. 반면 4사구는 23개를 얻었다. 클락과 함께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는 롯데 가르시아가 138타석에서 홈런 8개를 쳐내는 동안 삼진을 31개나 당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야구든 한국어든 아는 게 힘
클락은 한국야구에 관한 모든 걸 배우려고 노력한다. 전력분석팀에서 제공한 동영상과 분석자료를 꼼꼼히 챙기는 건 물론이고 스스로 상대투수의 장단점을 찾아 메모한다. 궁금한 게 있으면 동료에게 곧장 물어보는 게 영락없는 수험생의 자세다. 숙소에선 국어사전을 들고 한국어를 공부해 한글을 직접 쓸 수 있을 정도다.
클락은 “미국에선 같은 팀 동료와도 경쟁하지만 한국에선 동료끼리 서로 돕는 모습이 좋다”면서 “한국야구 수준이 높고 좋은 투수와 타자가 많지만 동료가 도와준 덕에 빨리 적응했다”며 웃었다. 아직 서투르긴 하지만 한국어로 의사소통하려고 하는 등 클락은 용병답지 않은 용병이다.
귀화는 대전팬에게 맡긴다?
최근 클락은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 귀화하고 싶다는 말로 야구팬의 관심을 끌었다. 연타석 투런 홈런을 쳐낸 지난 10일 경기 후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도 진심이냐는 질문을 받자 한국말로 “(기회를) 주세요”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 이유를 묻자 “국가대표로 뛰고 싶은데 미국 대표팀에서 부르지 않았다”면서 “우리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으로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고 한 말이다”고 대답했다. 지난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끈 김인식 감독이 한국 대표팀에 불러준다면 정말 귀화하겠다는 말일까?
슬쩍 클락에게 “팬들은 당신이 용병이 아닌 한국 선수로 뛸 날을 기다린다”고 이야기했다. 이 말에 빙그레 웃은 클락은 “부산과 서울처럼 대전에서도 야구팬이 열렬히 응원해주면 귀화를 생각해 보겠다”며 여운을 남겼다.
대전=이상준 기자 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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