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니콜슨, 모건 프리먼이 주연한 영화 <버킷 리스트> 에선 두 노인이 이집트 여행을 떠난다. 석양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기자의 피라미드와 생기 넘치는 카이로 시내. 그들의 목록에 이집트는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가 보고 싶었던 장소로 적혀 있다. 버킷>
인천공항에서 12시간을 날아 카이로 공항에 도착했다. 12시간의 비행은 일상의 일탈을 찾기 위해 투자하기엔 너무도 길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분 초 단위로 시간을 쪼개 쓰던 생활에서 잠시 여유를 갖기 위해 시작한 여행, 정작 몸은 쉴 시간이 없다.
시차 적응도 못 한 채 카이로에서 기자까지 버스로 달려 그 유명하시다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보며 시작되는 이집트 여행의 첫 일정. 거대한 피라미드를 보며 감동을 받는 것도 잠시, 손 안에 잠시 한 움큼 쥐고 있던 모래알이 빠져나가는 것만큼 가볍고 빠르게 시간은 지나갔다.
아쉽지만 나일크루즈를 위해 잠시 머물렀던 카이로와 이별하고 이집트 국내선으로 1시간 정도 걸리는 룩소르로 이동했다.
룩소르에서 아스완까지 나일강을 따라 운행하는 나일 크루즈의 매력은 비로소 이집트 여행의 여유를 느끼며 나일강 곳곳에 숨어 있는 유적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룩소르에는 람세스2세가 세운 거대한 신전들, 왕과 왕비의 무덤들이 자리 잡고 있다. 아스완으로 가는 길에는 에스나, 에드푸, 콤옴보의 다양한 신전들을 둘러볼 수 있다. 룩소르에 정박한 크루즈에 짐을 풀고 유적지 투어를 나섰다.
이집트 문명이 남긴 문화유산 중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것은 고왕국 시대에 만들어진 피라미드들이지만 문화적으로 번성했던 시기는 신왕국 시대였다. 룩소르는 이집트가 문화적으로 가장 번성했던 신왕국의 수도다.
멤논의 거상, 하셉수트 제전, 왕들의 계곡, 카르나크 신전 등이 유명하다. 이중 가장 돋보이는 곳은 카르나크 신전. 양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들이 늘어서 있는 통로를 지나 나타나는 대신전의 거대함. 이집트 문명처럼 화려했던 채색도 모래빛으로 퇴색했지만 까마득한 기둥의 끝을 쳐다보며 위대했던 문명에 찬사를 보내게 된다.
크루즈는 룩소르를 지나 에드푸에 도착하기 전 에스나의 수문을 통과하기 위해 10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만약 버스 편을 이용해 둘러보았다면 하루 반나절이면 될 나일강 코스를 4일에 걸쳐서 여행하고 있다.
하지만 예측하지 못한 불편함조차도 여행의 즐거움이 아닐까. 정박한 크루즈 주변에 먹이를 찾는 갈매기들처럼 몰려들어 “원 달러”를 외치며 호객하는 보트 상인들의 모습이 오히려 정겹다.
에드푸에 도착해 호루스 신전으로 향했다. 호루스 신전은 매의 머리 형상을 하고있는 호루스 신을 모시는 신전. 신전 앞 탑문 외벽에 전쟁 모습이 담긴 거대한 부조가 인상적이다. 놀랄 만큼 보존이 잘 된 이 신전은 룩소르의 카르나크 신전에 이어 이집트에서 두번째로 큰 신전이다.
아스완에 도착해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아스완 하이 댐이다. 아스완 하이 댐의 건설로 아부심벨과 필레 신전 등의 유적이 수장당할 위기에 처했으나 유네스코의 지원으로 안전한 곳으로 옮겨졌다. 아스완 하이 댐은 편리 만을 추구하는 현대문명의 이기적인 상징처럼 보인다.
필레 신전은 기원전 3~4세기경 필레 섬에 세워진 이시스 신전이다. 옮겨지지 않았다면 영원히 볼 수 없었을 역사의 흔적.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나일강의 경치가 인상적이다.
나일 크루즈는 작렬하는 아프리카의 태양 아래 나일강 주변의 주요 유적들을 감상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배 위에서의 편안한 숙박이 보장되니 일석이조다.
오전과 오후에는 정박지에 내려서 주변 유적들을 돌아보고 태양이 뜨거운 낮에는 여객선으로 돌아와 편안한 휴식을 누릴 수 있다. 갑판 위에서 웅장한 나일강의 흐름을 바라보며 더위를 피하고, 밤에는 금방이라도 쏟아져내릴 것만 같은 별이 가득한 하늘 아래서 로맨틱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나일 크루즈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쉴 틈 없었던 여정에 대한 꿀맛 같은 보상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진 야자수를 따라 유유히 지나는 크루즈 옆으로는 작은 배들이 달라붙는다.
크루즈 여행객을 상대로 물건을 파려는 상인들.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흥정을 걸어오지만 그런 모습도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건 나일강의 여유 때문일 것이다. 밤마다 열리는 작은 선상 파티에서 새로운 여행 동반자를 만나는 것도 가슴 설레는 추억을 선사한다.
룩소르(이집트)=글ㆍ사진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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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수첩/ 이집트
▲ 이집트와 한국의 시차는 7시간. 무슬림이 인구의 90%로, 아랍어를 사용한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쌀쌀하므로 일교차를 대비해 긴팔 옷을 준비해야 한다. 화폐는 이집트 파운드, 1이집트 파운드는 약 200원이다. 달러로 환전해 가서 현지에서 다시 쓸 만큼 소액권으로 환전해 쓰는 것이 유리하다.
▲ 대한항공이 카이로까지 월, 수, 금요일 주 3회 운항한다. 예전에는 두바이를 거쳤지만 지난해 10월 직항 노선이 열려 비행 시간이 3시간 가량 단축됐다.
▲ 나일강 크루즈 여행은 크루즈 만을 즐길 수 있는 전문 프로그램과 이집트 일주 여행에 포함되는 패키지로 나눌 수 있다. 이집트 크루즈 일주 패키지 상품은 200만원대 초반부터 다양하게 나와 있다. 이집트 관광청 (02)2263-2330
류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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