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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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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

입력
2008.05.13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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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카하트 지음ㆍ정영목 옮김/뿌리와이파리 발행ㆍ349쪽ㆍ1만3,000원

“내가 사는 파리의 한 동네 좁은 거리에는 앞 창문에 스텐실로 ‘데포르주 피아노: 공구, 부품’이라고 간단하게 이름을 박아 넣은 자그마한 가게가 있다.”

미국 태생으로 현재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작가 사드 카하트의 에세이는 이 담담한 첫 문장을 시작으로 매혹적인 ‘피아노 월드’를 펼친다. 어린 시절이던 1950년대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 남부 퐁텐블로에 거주하며 피아노를 처음 배웠던 작가는 오랫동안 피아노를 잊고 살다가 89년 가족과 파리에 정착해 이 단출한 피아노 가게와 마주친다. 오래된 유럽제 피아노를 손봐서 다시 되파는 가게 주인 ‘뤼크’는 중고 피아노를 사려고 찾아온 작가에게 처음엔 까다롭게 굴지만, 이내 피아노의 진면목을 가르치는 선생이자 좋은 이웃이 돼준다.

파리의 이방인인 작가가 수작업으로 옛 피아노를 되살리는 공방의 단골이 되고, 이곳에서 구입한 ‘베이비 그랜드’(소형 그랜드 피아노)로 다시금 연주에 취미를 붙이면서 이야기는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술독에 빠진 뛰어난 실력의 조율사 ‘요스’에게 피아노를 맡기면서 작가는 조율의 심오한 세계를 엿본다. “정확하게 치려면 정확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안나‘에게서 피아노 레슨을 받으면서는 억압적으로 연주법을 배웠던 유년 시절의 우울한 기억을 털어내고 순수한 즐거움을 되찾는다. 이렇게 틔운 귀는 그가 이웃에 사는 연주자들을 발견해 교유를 맺도록 돕기도 한다.

작가가 뤼크의 가게를 드나들며 넓혀가는 피아노 지식은, 음악을 통해 윤택해지는 그의 일상만큼이나 흥미롭게 읽힌다. 책엔 피아노 유형, 작동 원리, 내부 구조 등 기계적 상식들이 풍성하고, 무엇보다 19세기 중반 절정을 맞았다가 미국제 대량 생산 피아노에 가려 빛을 잃은 옛 유럽산 에라르ㆍ플레옐ㆍ가보ㆍ스타인웨이 피아노들의 고풍스러운 매력이 오롯하다.

피아노 생산 연대를 ‘루이 18세’ ‘샤를 10세’ 등 프랑스 왕 재임기로 명명하면서 고(古)악기에 대한 애정을 비치는 뤼크의 모습은 피아노에 아로새겨진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상기시킨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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