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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아미빅

입력
2008.05.13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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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하라 히토미 지음ㆍ양수현 옮김/문학동네 발행ㆍ190쪽ㆍ9,500원

가네하라 히토미(25ㆍ사진)는 2004년 초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를 그만둔 뒤 열두 살부터 소설을 썼고, 중학생 나이에 자살 기도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고등학생 나이 때부터 남자친구와 동거하며 한동안 ‘빠친코’에 빠져 살았던 그녀의 수상작 <뱀에게 피어싱> 은 열아홉 소녀와 두 남자 간 피어싱과 문신이란 ‘신체 개조’ 행위를 매개로 펼쳐지는 기묘하고 섬뜩한 사랑 이야기로 화제가 됐다.

당시 공동 수상자였던, 조신한 와세다대 학생인 와타야 리사-가네하라보다 한 살 어려 최연소 수상 기록을 세웠다-와의 대비 효과도 컸다.

<아미빅> 은 데뷔작과 두 번째 장편 <애시 베이비> 에 이어 국내 소개되는 작가의 세 번째 장편이다. <애시 베이비> 는 인간의 광기 어린 욕망을 데뷔작보다 한층 강렬하게 드러낸 문제작이었다(‘19세 미만 구독불가’란 딱지를 달고 국내 판매 중이다). 이번 작품의 주제 역시 욕망으로 수렴되지만, 그 표현 방식은 전혀 달라졌다. 술에 비유하면 두 전작이 ‘스트레이트’라면 이번 것은 ‘칵테일’에 가깝다. 자극적 소재가 훨씬 줄었고 구성은 복잡해졌으며 에두르는 화법을 쓴다.

표현 하나하나가 눈과 뇌를 강타하던 전작들과 달리 <아미빅> 은 찬찬히 읽을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취기도 천천히 찾아온다.

주인공은 몸무게 30킬로그램을 간신히 넘는, 자폐증ㆍ거식증ㆍ허언증의 기미가 보이는, 소설과 잡문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는 한 20대 여성. 그녀는 먹는 것을 혐오하며 영양제, 마실 것, 무ㆍ오이만으로 끼니를 때워온지 오래다. 하지만 요리책을 달달 외워 자긴 먹지도 않을 케?葯湧?매일같이 만든다.

방에 있을 때 그녀에겐 “아메바가 뇌 주위를 춤추”면서 시각, 촉각, 지각이 제각기 따로 작동한다는 환각에 빠져 제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글을 쓰는 일이 잦다. 이런 글 중 하나를 저도 모르게 연인에게 보낸 걸 알고 불안해 하기도 한다. 외출하면 환각에서 한결 자유롭지만 충동구매와 자신을 파티시에(제빵사)라 소개하는 거짓말을 반복한다.

언뜻 맥락 없어 보이던 그녀의 분열적 행위가 점차 그 연원을 드러내며 작품엔 탄력이 붙는다. 분열의 뿌리엔 파티시에 약혼녀를 둔 연인에 대한 집착이 자리하고 있다. 살기 위해 먹는 인간을 싸잡아 ‘돼지’ 취급하며 신(神)과 같은 삶의 감각을 유지하는 그녀가 한낱 비루한 불륜의 감정을 떨치지 못한다. 이 정신적 간극을 메우려 무의식은 환각을, 의식은 연기(演技)를 불러낸다.

하지만 가네하라는 독자가 어렵사리 짜맞춘 이런 해석을 매몰차게 흩어버리는 반전을 선사한다. 뒷통수 맞은 듯 충격적인 것은 아니지만, 거대한 미로에서 다시금 길을 잃은 듯한 서늘함을 주는 결론이다. 작가는 영단어 ‘amebic’을 모두 대문자(AMEBIC)로 바꾸고 거기에 새로운 뜻을 붙여 제목 삼았다. 소ㆍ대문자에 따른 제목의 중의적 의미가 흥미롭다. 직접 확인해 보시길.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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