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나 중국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조류 인플루엔자(AI)가 ‘토착화’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AI는 겨울 철새들에 의해 신규 유입되는 일종의 ‘계절 바이러스’였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뒤늦은 4월에 처음 발생했고, 초여름 날씨의 5월에도 확산 속도가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국내에 유입된 바이러스가 죽지 않고 살아 남아, 오리 닭 등 가금류를 매개로 사계절 아무 때나 전파되는 ‘토착화’ 징후가 포착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금 우리나라가 ‘AI 토착화’ 단계에 진입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런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징후는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는 지난 9일 AI 간담회에서 “현 상태에서 AI 확산 요인을 조기에 차단하지 못하면 AI 토착 국가로 전락할 위험성이 농후하다”며 “특단의 방역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모인필 충북대 교수도 “토착화란 AI 바이러스가 국내에서 지속적으로 전파되는 것을 말한다”며 “아직 그 단계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상당한 징조가 보인다”고 말했다.
토착화 매개체로 전문가들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오리다. 닭은 고병원성 AI에 걸리면 길어도 사흘 내에 폐사하지만, 오리는 AI 바이러스에도 끄덕 없이 살아 남는다. 폐사하는 경우에도 통상 바이러스 유입 후 3주 정도가 걸린다.
더구나 별다른 증상이 없기 때문에 오리는 재래시장 등을 통해서 닭과 다른 오리 등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하기 용이하다. 이번에 서울 지역 AI 유입 경로로 지목 받는 성남 모란시장에서도 닭, 오리, 꿩 등을 함께 취급해 온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오리에 대한 방역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조만간 ‘사계절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여름이 다가올수록 바이러스의 생존률이 낮아져 AI 발생 건수는 줄어들겠지만, 여름 내 오리 등에 잠복해 있던 AI 바이러스가 가을철이 되면 다시 급속히 전파될 수 있는 것이다.
모인필 교수는 “정부의 초기 방역이 실패하면서 재래시장의 오리 등을 통해서 AI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며 “여름철 AI 발생이 줄었다고 안심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모든 오리의 도축 전에 검사를 의무화하는 등 지속적인 방역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AI가 토착병으로 진화한다면, 인체감염 가능성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 물론 과학계의 지금까지 입장은 “AI 바이러스는 근본적으로 조류 바이러스여서 인체 감염은 상당한 악조건이 아니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이번 AI의 경우 과거 두 차례 발생한 바이러스보다 훨씬 강력한 종(種)이어서, 토착단계에 접어들 경우 사람이 감염될 확률도 전보다 높아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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