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국 연예기자 1호 정홍택의 지금은 말할 수 있다] <8> "고자세 작곡가들 노래실력 좀 볼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국 연예기자 1호 정홍택의 지금은 말할 수 있다] <8> "고자세 작곡가들 노래실력 좀 볼까"

입력
2008.05.13 02:26
0 0

요새는 “지쓰지부” 가수들이 많다. 지가 쓰고 지가 부른다는 말, 즉 싱어송 라이터 대신 내가 만든 우리말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웬걸,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히트 송을 많이 내는 유명 작곡가로부터 곡을 받으려면 줄로 서서 기다려야 했다. 간신히 곡을 받는다 해도 강행군 연습을 하게 된다. “노래를 그 따위로 밖에 못 하냐? 노래에 맛이 안 나잖아, 맛이. 좀 제대로 불러 봐라.” 소리소리 질러대니 자존심도 상하고 등허리에 땀은 나고, 이럴 때 가수들은 대부분 속으로, “뭐야, 저는 노래가 꽝이면서 내 속을 긁어 대냐?”라는 생각을 하지만, 겉으로는 “네, 네, 잘 할께요, 잘 할 수 있어요.”라며 굽신거리게 된다.

열 받는 가수들에게 내가 또, 불을 질러 댔다. 가수들이 작곡가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노래에 맛이 없다고 허구헌날 야단만치는 작곡가들, 도대체 그들의 노래 실력은 얼마나 되는지 채점을 해서 그 점수를 고스란히 “주간한국” 신문에 싣자는 기획이다. 채점은 누가? 물론 가수들이 점수를 주는 것으로 한다. 아이구 재미있어라. 가수들은 서로 자기를 끼워 달라고 “저요, 저요”했다. 그래서 처음엔 10명으로 심사위원을 꾸미려다가 복수극장의 지원자가 하도 많아서 20명으로 늘렸다. 평소에 노래 부르던걸 기준으로 하고 절대로 개인감정은 넣지 않기로 선서를 했다.

68년 12월. 당시 최고의 주가를 자랑하던 작곡가 30명을 내가 골랐다. 그들이 심사 대상자들이다. 그리고 심사위원으로는 남자가수 중에서 최희준 박형준 위키리 유주용 배호 이상렬 태원. 여자가수 중에는 이미자 패티김 윤복희 현미 한명숙 이금희 박재란 김상희 문주란 리나김 리타김 강정화 임선아를 선정했다. 해 놓고 보니까, 여자가수가 더 많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 때는 남자보다 여자가수가 더 많았다.

나는 20명의 가수들한테 30명 작곡가들의 명단을 주고 감정, 음정, 음색으로 나누어 채점하도록 했다. 공정하게 심사를 하고 절대로 사심을 넣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지만, 그래도 일말의 정 때문에 고민할지 몰라 “봐주는 점수” 란을 만들었다. 그러니까, 봐주는 점수를 뺀 것이 진짜 그 작곡가의 노래실력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가수가 어떤 작곡가에게 몇 점을 주었는지 하는 것은 공개하지 않고 나만 가지고 있기로 했다.

노래를 제일 잘 하는 작곡가로는 역시 손석우 길옥윤 한동훈 이인권 고봉산씨 등이다. 사실은 이 양반들은 실제로 노래를 취입한 실력파들이다. 별첨한 채점표를 보면 알겠지만, 이들에게는 봐주는 점수를 아주 짜게 주었다. 그리고 실력이 많이 모자라는 사람들에게 봐주기를 후하게 했고. 재미있으라고 기획한거니까 크게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두드러지게 노래가 엉망인 작곡가는 이봉조 박춘석 김인배씨다. 더구나 이들은 한결 같이 허스키 보이스다. 그래서 내가 세 사람이 “허스키 트리오”를 만들어서 노래 불러 보라고 제안을 했더니, 다른 사람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는데 이봉조씨 혼자서 열 받아 가지고 TBC-TV의 코믹 드라마 주제가를 불러서 놀라게 만들었다. 주제가를 불러 놓고 나서 나를 만나더니 “으떻노? 이만하문 노래가 수준 겁이지?”하며 어깨를 으쓱댔다. 내가 고개를 옆으로 강하게 흔들었더니, 마음씨 좋은 이봉조씨, 웃으며 하는 말이 “그래 맞다. 내 음치다. 음치라 캐도 개성이 있다 아이가, 개성!” 박춘석씨는 심각할 때를 빼고는 화를 잘 안 내는 성격이라서 별로 반응이 없었고, 김인배씨는 “정 기자가 거저 음티를 용케 찾아 냈구만 기래”하면서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했다.

득점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봐주는 점수(이하 봐점)의 내용이 아주 짱이다. 이른바 주최 측의 농간으로 보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노래 잘하는 샹송가수 출신 한동훈씨는 “봐점”을 1점 받았고 손석우 길옥윤씨는 2점을, 이인권 고봉산씨는 4점 밖에 안 주고 음치급인 김인배 박춘석 이봉조씨는 봐점을 20점씩이나 준 것 등이 오해 받을 만 하다. 그러나 절대로 주최 측 농간은 아니다. 나 혼자서 마음대로 한 것이 아니라 가수들의 동의를 얻었기 때문이다. 가수들도 마음이 약해졌던 모양이다.

“봐점” 내용을 보면, 정지용 시인의 “향수”에 곡을 불어 넣고, 지명길이 작사한 “사랑의 미로”를 작곡했으며 현재도 활발하게 창작을 하고 있는 김희갑씨는 “자꾸만 땅을 쳐다본다”는 이유로 5점을 받았고, 문정선이 노래한 “파초의 꿈”을 작곡한 김강섭씨가 “대머리가 근사하다”는 이유로 10점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강포중씨는 잘 웃어서 10점, “하숙생” 작곡가 김호길씨는 친정어머니 같다고 10점을, “동백 아가씨”의 백영호씨는 유구한 역사 위해 5점, “부모”의 작곡가 서영은씨는 코미디언 서영춘의 형님이라 5점, 오늘날 영화 음악가협회?이끌고 있는 이철혁씨는 키가 큼직해서 5점, “눈물을 감추고”의 홍현걸씨는 소주를 잘 마셔서 5점을 받았다.

모두가 다 재미있으라고 만든 기획이고 어떤 사람을 곤란하게 하려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기사가 “주간한국” 신문에 발표되고 나서 많은, 아주 많은 화제가 되었다. 요즘 등장하는 악플 보다는 이렇게 웃으면서 한 해를 넘겨보자는 의도였는데 그 당시로서 일단 성공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거 한번 해보는 건 어떨까? 작곡가에 국한하지 말고, 저명인사들 모두를 상대로! ㅋㅋㅋ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