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요리를 매치하는 강의를 다니곤 한다. 학생들은 매번 코냑이나 샴페인, 또 카망베르라는 치즈의 이름이 ’지명‘이라는 사실에 재미있어 한다. 술 이름이나 브랜드 명으로 알았던 코냑, 샴페인이 실은 프랑스의 어느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라 하면, 모두들 “코냑이라는 동네는 뭐가 맛있어요?”라든가, “샴페인까지는 파리에서 차로 얼마나 걸리는데요?”등의 질문이 들어온다.
그래서 그 동네들에 관한 공부도 틈틈이 해둬야 한다. 지리 선생님도 아닌데, 남의 나라 구석구석을 공부해야 하다니. 이 모든 것이 다 지명을 이름으로 가진 먹거리들 때문이다.
카망베르와 칼바도스
메뉴에 지명이 섞이면 두 가지의 이로움이 있다. 일단 먹는 이에게 ‘역사’ 있는 음식임을, 혹은 지역의 자부심을 머금은 맛임을 알려주는 힌트가 된다. 그렇게 그 맛을 한번 접하고 나면, 요리의 탄생과 연관된 그 동네가 궁금해진다.
카망베르는 가공하지 않은 연성 치즈로 속맛이 적당히 콤콤하면서 고소하여 치즈 초보자들도 쉽게 맛을 붙인다. 카망베르를 맛있게 먹는 방법 중 하나는 얇게 썬 사과를 곁들이는 것. 부드럽고 고소한 치즈의 풍미에 아삭하게 씹히는 새콤한 사과가 더해져 조화를 만든다.
사과가 맛있는 마을은 칼바도스. 칼바도스와 카망베르는 모두 프랑스 북서부의 노르망디 지방에 속한 마을들이다. 칼바도스의 사과는 우리의 대구사과나 청송사과에 비할 만큼 유명하다.
칼바도스의 사과로 만든 브랜디는 하고많은 술 가운데서도 프랑스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레마르크의 소설 <개선문> 을 읽은 사람들은 본문에 자주 등장하는 술, 칼바도스를 기억할 것이다. 그 아련한 술 이름 칼바도스가 다름 아닌 전주나 부천과 같은 지명인 것이다. 개선문>
타바스코와 우스터 소스
피자 전문점에 가면 테이블마다 놓여 있는 빨간 병을 본 적 있을 것이다. 이름하여 타바스코 소스. 필자가 특정 회사에 매수되어 브랜드 홍보를 한다고 생각지 마시라. 빨간 만큼 매운 맛의 타바스코 소스는, 소스를 만드는 고추의 원산지인 멕시코 동부의 지명 타바스코에서 온 말이기 때문이다.
우스터 소스도 마찬가지. 우스터 소스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양파, 마늘, 사과 따위에 조미료, 향신료를 넣어 익혀서 만든 소스. 영국의 우스터셔 주가 원산지’라 나온다.
새콤한 맛이 기분좋게 나기 때문에 스테이크에 곁들이거나 케? 등과 섞어서 또 다른 소스를 만들거나 할 때 쓰이는 우스터 소스. “아, 그 소스가 영국산이었구나” 혹은 “우스터셔 마을에서는 스테이크를 많이 먹나?” 하는 생뚱한 호기심이 생긴다.
또 ‘빵 드 카스티야’ 즉 카스티야의 빵이라는 의미로 출발한 ‘카스티야’는 오늘날 ‘카스테라’로 불리며 전 세계의 빵집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비프 부르귀뇽, 베이징 덕, 나라즈케
프랑스 부르고뉴는 물 좋기로 소문난 동네다. 정말 마을에 흐르는 물줄기의 수질이 높아서 그 옛날 프랑스 귀족들의 별장은 죄다 부르고뉴에 짓곤 했다. 그러다보니 맛있는 요리가 발달했을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프랑스 메뉴 가운데에는 부르고뉴에서 파생된 ‘부르귀뇽’이 붙은 이름의 요리가 많이 있다.
대표적으로 와인에 절였던 소고기 조각들을 잘 볶아 겉을 익힌 후 육수나 물, 고기를 재웠던 와인을 적당히 붓고 졸여낸 ‘비프 부르귀뇽’(boeuf bourguignon)이 있다. 한국의 갈비찜과 그 모양새가 비슷한 요리로, 부르고뉴 와인과 마시면 ‘홍어와 막걸리’처럼 잘 어울린다. 동향 출신의 음식과 술은 특별한 궁합을 자랑하니까.
태우는 향기가 뛰어난 유실수 가지에 불을 붙여 오리 한 마리를 천천히 구우면 ‘베이징 덕’을 만들 수 있다. 과일나무의 향기가 담백한 고기에 한껏 배어들고 천천히 구우면서 기름기를 쪽 빼기 때문에 그 맛이 뛰어나다.
일본의 관서지방의 도시 나라에서 유래한 ‘나라즈케’라는 반찬은 또 어떤 맛일까? 술지게미에 참외를 절여 삭혀 만든 반찬으로 아작한 맛과 그윽하고 독특한 향이 가히 중독적이다.
전주비빔밥, 진주비빔밥, 나주 곰탕, 광양 불고기
우리도 지명이 붙은 먹거리를 많이 갖고 있다. 지역의 특산물인 콩나물에 김과 녹말묵 등이 더해지는 ‘전주비빔밥’과 숙주 시금치 고사리 등을 넣어 담담하게 비벼 내는 ‘진주비빔밥’, 국물이 말갛고 하얀 맛이 일품인 ‘나주곰탕’, 참숯과 황동화로에서 구워내 맛이 우아한 ‘광양불고기’ 등이 그것이다.
서울을 떠나 떠돌다가 전주에 들러 비빔밥을 먹고 전남으로 내려가 영광굴비 한 마리 구운 밥상을 받거나 나주곰탕을 한 그릇 ‘때리면’ 집으로 돌아갈 힘이 생긴다. 광양으로 가서 불고기를 먹고, 경상도로 넘어가 안동소주를 마시고 부산어묵 한 꼬치, 진주에 들러 비빔밥을 먹으면 그 여정은 맛으로 오래도록 기억된다.
그 음식을 먹은 곳, 함께 먹은 사람, 음식을 만들어 주신 분, 음식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 주신 분, 다 먹고 나왔을 때의 상쾌한 공기와 시원한 바람, 혹은 쨍한 햇살이나 유난히 맑았던 하늘이 주르륵 기억된다.
프랑스 노르망디 태생인 작가 모파상의 작품은 노르망디가 배경인 경우가 많다. 그의 대표적 두 장편인 <여자의 일생> 과 <벨 아미> 는 모두 노르망디를 배경으로 한다. 그래서 나는 모파상이 늘 칼바도스를 마시며 집필했을 것이라 혼자 상상한다. 벨> 여자의>
이 시간, 세계 어딘가에서 어느 외국인이 전주비빔밥이나 평양냉면의 사진을 보면서 전주를, 평양을 궁금해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지명이 붙을 만큼 오랜 역사와 자부심을 가진 요리는 그 자체로 명물이요 명품이다. 꼭 먹어보고 싶은, 그 맛의 근원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을 절로 일으키는.
박재은ㆍ음식에세이 <밥 시> 저자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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