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블린 케이 지음ㆍ류재선 옮김/바움 발행ㆍ440쪽ㆍ1만8,000원
“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중략) 비숍 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후략)”(김수영, <거대한 뿌리> 중). 거대한>
반세기 전만 해도 한국의 시계는 세계의 그것에 비해 무척 더디게 가고 있었다. 그러나 시인의 혜안은 벽안의 여성 선각자를 알아 보았다. 19세기 후반,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던 대영 제국의 여인은 매스컴이 없던 시대, 책과 잡지 기사로 영국 사람들에게 세계를 알렸다. 이 책은 영국왕립지리학회 최초의 여성 회원으로, 논픽션 여행기라는 새 형식의 글을 통해 당대인을 매료시킨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나는 문명이란 성가신 것이고, 인간 사회는 속임수로 가득하며 모든 관습은 범죄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난 아마 그 오래된 습관들 속으로 신속하게 들어가 버리겠죠.”(171쪽) 친구에게 보낸 편지는 냉소적인 구석이 있다. 그녀가 어떻게 문명의 억압과 자연의 해방 사이에서 현명하게 대처했는지를 보여주기에 족하다. 그녀는 관습과 체면을 지고의 가치로 여기던 당대의 규범을 거부했으나 거스르지는 않았던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사별, 비극적으로 치달은 결혼 생활 등 자신에게 들이닥친 고통의 시간을 이겨낸 대가였다.
빅토리아조 여인들의 불편한 치마 차림으로 그녀는 남정네도 힘든 여정을 마다하지 않았다. 물에 감은 머리가 이내 얼음 투성이가 됐으나, 담요를 몸에 똘똘 말더니 이내 곯아 떨어졌던 그녀였다. 뼛속까지 시린 날씨로 거동조차 힘들던 로키 산맥 탐험때다. 당대의 전 근대적 인습에도 불구, 미국을 시작으로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하와이, 티베트 등지를 오갈 수 있었던 것은 “건강 회복”이라는 이유를 표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녀가 지구의 구석을 찾아, 섬세한 눈으로 관찰하고 문학적 아취로 되살려 낸 저작들에 대해 당대 사람들은 매진이나 절판으로 답했다. ‘스펙테이터’, ‘네이쳐’ 등 당대의 풍물지들은 정밀한 관찰에 근거한 통찰에 찬사를 보냈다. 신비한 동양과 열대 정글을 헤매던 이야기, 그에 대한 기록이 영국인들에게 몰고 온 신선한 충격 등은 동시대인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켰다.
'비숍 여사는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에 대해 쓰기 위해서 1883 ~ 1887년 사이에 우리나라를 네 번 방문했다.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은 1898년의 저작이다. 1904년 73세로 별세. 한국과>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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