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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 조금은 겁나죠… 책·라디오·랜턴 챙겨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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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 조금은 겁나죠… 책·라디오·랜턴 챙겨떠나요

입력
2008.05.13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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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챙길 것도, 반드시 빼놓을 것도 없다. 꽉 조여진 삶의 현을 느슨하게 풀러 떠나는 길, 뭘 하고 말고 따위의 강박은 부질없다. 여여한 마음과 넉넉한 시간이면 족하다. 하지만 무위(無爲)의 여유가 두려운 것도 사실.

늘 은둔을 꿈꿨지만, 그 은둔은 관념 속에 은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겪어보지 못한 은둔은 쑥과 마늘의 동굴처럼 어둑시근하다. 이런 이들을 위한 비상용 은둔 키트를 소개한다. 말하자면 이건, 은둔에 가슴 떨리는 이를 위한 우황청심환이다.

▲ 책

질마재 너머 바닷가 외할머니의 추억(서정주의 시집 <질마재 신화> ), 3대째 종가를 지켜내는 여인들의 인고의 세월(최명희의 소설 <혼불> ), 내리쬐는 햇볕 때문에 방아쇠를 당기는 생의 모순(카뮈의 소설 <이방인)) …. 모두 까맣게 잊고, 보고서, 고지서, 계약서만 들여다보고 산 지 오래 됐을 것이다.< p>

일상을 잠시 벗어나는 길, 책 몇 권 챙기지 않을 수 없다. 재테크 비법이니 경제경영서니 하는 금속성 책은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킨다. 아득히 먼 옛날 베갯모를 적시게 만들었던 책, 혹 묵은 숙제처럼 '언젠가는 읽어야지' 했던 책이 제격이다.

▲ 라디오

선방(禪房)에 절구통처럼 들어앉을 작정이 아니면 긴긴 침묵과 고집스레 대면하느라 진을 뺄 필요 없다. 격리의 공간에서 가장 요긴한 문명의 이기는 라디오. 되도록 스피커가 달린 것이 좋다. 풀벌레 소리가 섞인 모노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음향은, 수천만원짜리 하이파이에서도 기대할 수 없었던 안식을 준다. 추천 채널은 KBS 클래식FM(수도권 93.1㎒).

▲ 가스랜턴

문명의 불빛이 멸절된 곳으로 떠나는 것이 은둔여행의 참맛이다. 하지만 배를 바닥에 대고 누워 시집이라도 뒤적이려면 조명은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 랜턴을 켜면 무드가 팍 죽는다. 화력 조절 레버로 빛의 부피를 삭일 수 있는, 가까이 귀 대면 '소소소' 소리를 내며 타는 가스 랜턴이 제격이다. 그 빛을 보고 달려드는 날벌레를 쫓는 것도 은둔거사의 운치.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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