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라이시 지음ㆍ형선호 옮김/김영사ㆍ364쪽ㆍ1만7,000원
“미국인은 소비자와 투자자로서는 승리했지만 시민으로서는 실패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장관을 지냈고 지금은 UC버클리대 교수로 있는 저자는 1970년대 이후 신기술, 세계화, 탈규제 등을 배경으로 등장한 미국 중심의 글로벌 자본주의를 ‘슈퍼자본주의’라고 부르면서 이렇게 진단한다.
2차대전후 1950, 60년대 미국 경제는 황금기를 구가했다. 유럽과 일본 기업이 등장하기 이전 미국의 소수 거대기업들은 과점체제를 구축해 막대한 이익을 누렸고, 그 과실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납품업체, 유통업체, 노동자들에게 골고루 돌아갔다. 기업인들은 국가적 관심사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가졌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조화를 이루는 듯했던 이 상태를 저자는 ‘민주주의적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외국 기업들이 저임금을 바탕으로 부상하면서 미국 기업들이 경쟁력을 잃었다는 것이 상식적인 견해이지만 저자는 다르게 분석한다. 구소련과의 경쟁에서 미 국방부와 나사(NASA)에 의해 개발된 반도체, 광섬유, 레이저, 인터넷 등의 신기술이 민간으로 흘러 들어가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면서 기존 과점체제를 흔들기 시작했다는 것.
여기에다 운송비를 극적으로 줄인 대형 화물선과 수송기, 컨테이너, 인공위성 등 운송과 통신의 신기술이 세계화의 불을 당겨 기업들간 경쟁이 격화되었다. 레이건 전 대통령 등 보수적인 인물이나, 신자유주의 같은 이념의 영향보다는 신기술과 조직의 현실적 욕구가 경제 변화의 원인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신기술의 보급은 탈규제를 촉진시켰고 특히 금융분야에서 개인들을 단순한 저축자에서 투자자로 변화시켰다. 이런 흐름에 따라 월마트는 가장 싼 가격에 상품을 팔게 됐지만, 직원들의 임금과 복지수준은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증시는 80년대 초부터 2000년대까지 계속해서 올라갔다. 슈퍼자본주의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가득하지만 사실 미국인들은 소비자와 투자자로서 엄청난 득을 보았다는 저자의 분석이 날카롭다.
문제는 기업들이 번 막대한 돈이 워싱턴 정가로 흘러 들어가 시민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슈퍼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저해하지 못하도록 시민으로서 미국인이 해야 할 일은 기업들이 게임의 룰을 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제안은 한국에도 해당하는 말이다.
남경욱 기자 kwnam@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