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전북예술회관에서 한국화 그룹전이 있었다. 먹거리의 고장 전주에 왔으니 맛집을 찾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다. 점심을 먹기 위해 유명하다는 육회비빔밥 집엘 들어갔다. 빨갛게 미리 볶은 찰진 밥알 위로 오색 찬란히 얹혀 있는 나물들이 먹음직스럽다. 흐뭇한 마음으로 이제 잘 비벼야 할 터. 젓가락을 들고 육회를 뜨는 순간, 군침 돌던 식감은 어디로 갔는지 착잡한 마음이 앞선다. 쇠고기가 그냥 싫어지기까지 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가 비빔밥 위로 오버랩 되고, TV화면 속 광우병으로 퍽퍽 쓰러지던 소가 마음 언저리를 심히 괴롭혔던 탓이다. 눈앞에 둔 육회비빔밥은 멀쩡한 음식이지만, 얼마 있지 않아 수입될 ‘개운치 않은 미국산 쇠고기’가 마음을 억누르니, 음식 씹는 뒷맛도 씁쓸해지고, 나랏일 걱정과 함께 탄식이 절로 나온다.
우리나라 사람은 서양인과 분명히 체질이 다르고 음식 문화가 다르다. 우리는 소를 한 마리 잡으면 내장부터 각종 부산물까지 거의 버리는 게 없다. 그러니 보신용으로 사골 국을 끓이고 해장용으로 내장탕도 끓이고, 잘 나오는 음식점엔 소간에 천엽까지 서비스를 한다. 스테이크와 햄버거를 즐겨 먹는 미국에서는 쉽게 인식하기 어려운 다른 음식문화인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식품 관리 체계가 허술한 점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집단 식중독, 기생충 김치, 위해 화학 첨가물 등은 드물지 않게 보아온 사실이다. 농수산물의 원산지는 중국산이 국내산으로 둔갑하는 일이 허다하고, 수입육이 한우로 뒤바뀌는 것도 종종 목도되는 일이다. 지금 쇠고기로 온 나라가 난리지만, 농림수산식품부나 농협 홈페이지에서도 한우와 수입육을 제대로 구분하는 방법조차 찾기가 어렵다.
극단적 상업주의 이기심을 갖는 판매자가 있다 하더라도, 사서 먹는 입장에서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쇠고기 청문회에서도 밝혀졌듯이 이번 협상이 FTA(자유무역협정)와는 관련도 없다 하였다. 그렇다면 더욱 끌려갈 필요도 없는 것이 아닌가.
쇠고기야 팔 사람도 많은데, 사는 사람 마음이 아닌가 싶다. 구호물자도 아니고 의심스러우면 사지 않으면 되고, 타당한 거래를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도 저자세일까. FTA 타결도 그렇고, 미국 관련 현안만 등장하면 당국자는 ‘한미동맹’ 운운하며 모든 합리적인 논의를 덮어 버린다.
특히 금번 미국산 광우병 의심 쇠고기의 수입 결정은, 한미 간의 동맹이나 안보의 문제도 아닌 축산물 교역에 관한 문제이다. 따라서 소비자의 입장에서 질 좋고 안전한 식품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잘 고르고 따지고 하는 문제를 정치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소비활동으로 먼저 보아야 한다. 미국의 국민은 95% 이상이 20개월 미만의 소를 먹고, 일본과 대만도 마찬가지인데, 왜 우리만 먹어야 하는가 말이다.
정부 협상 책임자들이 그들만이 생각하는 정치적 성과를 고려하여, 성급하게 타결을 서둘렀다는 의심을 버릴 수가 없다. 책임자들에 대한 원성뿐 아니라, 미국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아가고, 양 국민들 간의 감정의 골만 파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지 않다. 이건 정말 좋지 않다. 어차피 우리는 농축산물을 자립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외국의 것을 수입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한국 정부 측의 일관성 없는 잘못된 협상으로, 국민들 사이에서는 미국 농축산물 전반에 대한 불필요한 의심까지 증폭될까 걱정이 된다.
안진의 한국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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