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인 가스프롬의 주식 시가총액이 3,248억달러(약 340조원ㆍ8일 종가기준)로 4억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중국 차이나모바일과 미국의 자존심 제너럴일렉트릭(GE)을 제치고 세계 3위로 올라섰다. 가스프롬 앞에는 엑손모빌(미국)과 페트로차이나(중국)만 남았다.
뉴욕타임스는 “가스프롬이 6년 안에 세계 1위 기업으로 올라설 것”이라며 이 같은 성장세는 러시아 정부와의 밀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11일 보도했다. 신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까지 6년간 가스프롬 회장직을 맡았다. 이 기간 가스프롬은 시총이 32배 이상 늘어났다. 정부와의 유착은 메드베데프 정부에서도 계속된다. 6월 주주총회에서 선임될 차기 회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전 대통령에게 총리직을 양보한 빅토르 주브코프로 내정됐다. ‘대통령→총리→가스프롬 회장→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러시아식 수뇌 회전문’이 형성된 것이다.
가스프롬은 납세액이 러시아 정부예산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러시아에서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최근 석유회사까지 인수해 원유와 천연가스를 합할 경우 가스프롬의 하루 생산량은 사우디 아라비아 전체를 앞설 정도다. 러시아 정부는 국제무대에서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는데 가스프롬의 위세를 활용해 왔다. 블라디미르 밀로프 러시아 전 에너지차관은 “에너지가격이 급등하면서 가스프롬은 이웃 국가를 통제하는 좋은 수단이 됐다”고 말했다. 푸틴은 과거 자신에 비판적인 언론을 잠재우기 위해 가스프롬에게 방송국을 매수하게 하는 등 국내 경쟁자 제거에도 가스프롬의 재력을 이용했다.
크렘린은 가스프롬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한다. 정부는 최근 치솟는 물가로 고통 받는 서민들을 외면한 채 천연가스 가격을 올해 안에 단계적으로 25%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인상은 2011년 러시아 내수 천연가스 가격이 국제가격과 같아질 때까지 계속된다.
하지만 가스프롬도 대부분 국영 독점기업이 그렇듯 낭비와 비효율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뉴욕타임스는 진단했다. 가스프롬의 투자결정이 크렘린의 이해관계에 좌우되다 보니 설비투자 등 필수적 투자는 뒤로 밀릴 수 밖에 없다. 가스프롬은 최근 북극지역에 대한 개발에 750억달러(약78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영하 50도를 넘나드는 극지 개발이 단기간에 성공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크다.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의 경제자문관을 지냈던 미하일 델야긴은 “가스프롬이 러시아 정치권에 공급해야 할 자금이 너무 많고 광범위하다”며 “가스프롬이 늘어나는 천연가스 수요를 제때 충족시킬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획기적 생산확충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가스프롬이 서유럽과 체결한 천연가스 장기 계약분을 차질 없이 공급하려면 국내 공급을 줄일 수 밖에 없으며, 이는 결국 러시아 국민의 희생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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