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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광우병과 '두려움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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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광우병과 '두려움의 문화'

입력
2008.05.13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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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의 문화(the culture of fear)> 등의 책을 쓴 영국의 사회학자 프랭크 푸레디는 두려움을 우리 시대의 특징적 현상으로 규정했다. 그 원인은 사회가 복잡해지고 대중이 소외되고 고립된 상황에서 정치를 비롯한 기성 권위가 신뢰를 상실한 것이다. 이 때문에 지식이 보편화 한 시대에 감성적 주장이 난무하고, 개인은 온갖 위험을 제대로 가늠 하지 못해 쉽게 불안에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어른들의 불안에 따른 과보호가 자녀들의 위험 분별력을 낮춰 근거 없는 두려움을 키운다고 보았다. 또 두려움의 문화가 이념구분마저 흔들어 과학과 미래를 긍정하던 진보가 보수화하고 보수가 되레 과학과 혁신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 두려움 부추기는 정부와 사회

이를 낡은 이념적 주장으로 여기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그가 저서 <지식인은 모두 어디 갔나> 에서 정치와 지식인들의 각성을 함께 촉구한 것은 새겨들을 만하다. 최근 <두려움의 과학과 정치학> 을 쓴 댄 가드너는 정부와 언론, 지식사회, NGO 등이 저마다 이기주의 때문에 대중의 두려움을 부추긴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를 극복하려면 대중은 늘 깊이 생각해야 하고, 정치는 대중의 심리를 먼저 헤아려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런 견해를 토대로 ‘광우병 괴담’까지 낳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을 살피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광우병 공포의 발원지 영국에서 광우병 소가 처음 발견 된 것은 1986년 11월이다. 정부는 치명적 괴질 발생을 일반에 알리지 않은 채 조사에 들어갔다. 이듬해 농가 80곳의 소 95마리가 발병한데 이어 88년부터 역병처럼 확산, 89년 말까지 1만 마리가 광우병으로 숨졌다.

정부는 뇌신경 질환인 스크래피(scrapie)에 걸린 양의 내장과 뼈를 갈아 만든 사료를 소에게 먹인 것을 원인으로 추정, 동물성 사료를 전면 금지했다. 그러나 변형 프리온(prions) 단백질 입자가 일으키는 광우병이 사람에게는 위험성이 없다는 결론을 96년까지 고수했다. 200년 전 첫 발생한 양의 스크래피가 인체에 영향이 없는 사실이 주된 근거였다.

과학자들은 원숭이 등의 동물 실험을 토대로 광우병 소의 변형 프리온이 인간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정부는 ‘쇠고기 안전’ 홍보에 매달려 보건장관이 4살 난 딸에게 햄버거를 사 먹이는 쇼까지 연출했다. 이런 논란은 95년 뇌손상 증세로 숨진 청년이 변형 크로이츠펠트야곱병(vCJD), ‘인간 광우병’의 첫 사례로 확인되면서 끝났다.

이후 적어도 160명이 인간 광우병으로 숨졌다. 광우병 소는 19만 마리에 이르렀고 축산업이 붕괴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광우병 재앙이 영국 사회에 끼친 가장 큰 해악은 정부와, 정부가 동원한 ‘과학’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허문 것이다. 이 때문에 조류독감, MMR 백신, 유전자조작 식품 등 국민보건 문제가 논란 될 때마다 과장된 괴담과 두려움이 과학과 이성에 기초한 토론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다.

97년 집권 후 광우병 위기 수습에 매달린 블레어 전 총리는 지난 해 퇴임 강연에서 “과학의 신뢰 회복이 영국의 미래를 위해 긴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광우병 대응 실패는 과학의 잘못이 아니라, 위험을 경고한 과학자들을 ‘왕따’ 시킨 정부와 전문가 집단의 그릇된 자세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했다. 이런 각성은 왕립 학술원이 “모든 보건정책 결정에 진정한 전문가로 공인된 과학자의 자문을 받으라”고 권고한 것이 상징한다.

■ 진정한 과학적 정책 토론해야

이를 좇아 블레어 정부는 독립적인 과학자문관과 자문평의회를 두고 정부기관의 모든 연구결과를 공개, 정책 토론을 활성화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세기적 재앙을 극복했다. 광우병 발원지보다 더 심각한 갈등과 혼란을 지레 겪는 우리 정부가 배울 게 많다.

사족 하나. 나와 가족은 87년부터 1년 남짓 영국에 살면서 소 꼬리를 숱하게 먹은 탓에 헌혈 금지자로 지정됐다. 요즘 가끔 그게 걱정스럽다.

강병태 수석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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