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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 깔깔~ 여고생이지만 "3년후엔 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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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 깔깔~ 여고생이지만 "3년후엔 부사관"

입력
2008.05.13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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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시 금산면 공군교육사령부 내 깊숙한 곳에 고등학교가 하나 있다. 전군 유일의 군사고등학교인 공군 항공과학고등학교. 한창 여드름을 고민할 ‘고딩’이 기지를 활보하는 것도 모자라, 올해 3월에는 여고생(신입생 150명 중 15명)까지 등장했다.

1969년 공군간부학교로 문을 연 이후 처음이다. 만 열여섯 나이에 51대 1의 경쟁률을 마다 않고 ‘여고생 예비군인’의 길에 들어선 이들을 교정에서 만났다.

군인일까, 여고생일까. “정확하게는 부사관 후보생이에요.” 아이들이 질문을 바로잡는다. 관제, 통신, 정비 등 항공전문 기술인력을 양성하는 항공과학고는 교육과학기술부가 학력을 인정하는 법정 중등교육기관이다. 졸업 후 부사관으로 임관해 7년 간 의무복무한다.

그래도 군사고등학교 아닌가. 아직 소녀 티가 확연한 저 웃음 뒤엔 무시무시한 게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라니까요. 총도 안잡아요.” 1주일에 두 시간, 군사학을 배울 때를 빼고는 군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단다.

군사학도 군에 대한 기본지식, 제식훈련, 군인윤리 등으로 심각하지 않다. 만 18세 미만은 총을 잡지 못하도록 한 ‘국제아동권리협약’을 준수해 학생들에게 집총이나 각개전투 같은 전투 훈련은 실시하지 않고 있다.

이근재(공군 대령) 교장은 “억지로 군인을 만드는 게 아니라 청소년기 인성 교육에 중점을 두고, 절도 있는 학생을 키워낸다는 기조”라며 “이런 과정을 통해 군인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고 말했다.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 지 2개월 여. 군인이 되는 것보다 홀로서기가 먼저였다. 다림질, 세탁, 바느질, 구두 손질 등 난생 처음 직접 해본 일들은 아직도 서툴기만 하다. 엄마 도움 없는 오전 6시 기상 및 점호도 쉽지 않다.

그래서 집 생각도 많이 났다. “처음 1주일 동안은 밥 먹다가도 울고, 음악 듣다가도 울고 그랬어요.”(주아현), “하지만 이제 여기가 집보다 편하다”는 건 비밀이다. “지금은 건빵 떨어졌을 때가 슬퍼요.”(임현아)

아직 군인은 아니지만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이 자신들이 생각해도 신기하다. “친구들이랑 얘기하다가 오후 6시가 아니라 무심코 ‘18시’ 이래요. 피자집에 가서 메뉴 정할 때, ‘불고기피자, 거수’ 이랬다가 친구들이 이상하게 쳐다보기도 하고, 동기들끼리 함께 외출 나가면 저도 모르게 발을 맞춰 걷게 되고….”(현아)

“이제 머리 긴 남자애들 보면요, 지저분해 보여서 싫어요.”(김소리) “밥 먹을 때는 빨리 먹고 남기지 않기.”(아현) 한번 터진 수다는 무용담을 늘어놓는 예비역들처럼 멈출 줄 모른다.

어렴풋하지만 국가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 소속감. 교가를 부를 때 이렇게 뿌듯했던 적이 없다고 했다.

군인의 그림자를 발견하려는 순간, 아이들은 다시 여고생으로 돌아간다. “밖에 있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있어요. 짧은 치마도 입어보고 싶고요.”(아현) “머리도 길러서 멋지게 하고 싶은데.”(소리) 말릴 새도 없이 얘기가 옆길로 흐른다.

“어떻게 젊은 남녀의 마음을 규제할 수가 있어요. 너무해요.”(소리) “안들키면 된대.”(아현) “난 장교랑 결혼할 거야.”(소리) “난 6살 차이까지 가능.”(현아)

한창 꿈을 꿔야 할 나이, 아이들은 왜 이 길을 택했을까. “단체생활, 운동, 제복에 대한 동경”이라는 감성 위에 “안정적인 직장, 공무원이 최고”라는 현실이 똬리를 틀고 있다.

대학 캠퍼스의 낭만은 날려보내게 됐지만 아현이는 “그 정도는 입학 전에 이미 각오했다”고 했다. “벌써부터 대학입시 걱정하는 친구들은 오히려 취업이 보장된 저를 부러워해요.”(소리) ‘취업 대란, 88만원 세대’의 안타까운 그림자다.

◆ 공군 항공과학고등학교

1969년 설립돼 71년 공군 기술고등학교로, 2006년 현재 명칭으로 바뀌었다. 현재까지 8,500여명의 부사관을 배출, 이중 4,800여명이 현역으로 근무 중이다. 3년간 정규 고교과정과 함께 전공별 특기교육(항공기계 정보통신 항공관제)과 군사학을 가르친다. 졸업 직전 8주간의 군사훈련을 마치고 하사로 임관한다. 일부는 공군사관학교에 입교하거나 대학 위탁교육을 받는다. 지난해 입학 경쟁률은 23.7대 1(남 20.7대 1ㆍ여 51.1대 1). 합격생의 평균 성적은 전국 남녀 중학생 중 각각 상위 15%, 9%에 달했다.

진주=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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