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쇠고기협상의 원래 시나리오대로라면 15일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빗장은 완전히 풀린다. 앞으로 남은 1주일동안, 시나리오 결말을 뒤집기 위해 정치권의 공방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야권은 ‘재협상’을 통한 새로운 결말을 유도하고 있지만 정부는 일단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이라는 기존 결말을 고수하고 있다.
◆수입위생조건 시행 유보→재협상
한미 쇠고기협상을 원천 무효로 하고 재협상을 벌여야 한다는 요구가 야권을 중심으로 거세다. 국민건강권을 지키지 못한 굴욕협상으로 협상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 “재협상은 없다”는 정부 입장이 강경하다. 정부로선 미측을 다시 협상테이블로 끌어낼 명분도 마땅하지 않고, 시간이 없기도 하다.
통합민주당은 8일 ‘수입위생조건 고시 무기한 유보→국회 쇠고기재협상촉구 결의안 채택→재협상’의 수순으로 이어지는 해법을 제시했다. 수입조건 이행 시기를 늦춰 미국에 다시 협상을 요구할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전략. 민주당은 “고시를 무기한 연기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도 논의하겠다”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재협상’에 대해서만큼은 요지부동이다. ‘절대불가’라는 입장에서 한발 물러섬도 없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재협상과 개정은 다르다”며 “협상 전체를 새롭게 해보자고 하는 재협상은 없다”고 재확인했다. 국회에서 재협상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해도 법적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
정부는 13일로 입안예고가 끝나는 새 수입조건의 확정고시를 늦추는 것에도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수입조건의 이행 일정도 한미 합의 사항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양국 협상대표가 서명한 합의문에는 ‘한국은 5월 15일에 법적 절차가 종료돼 시행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고 돼있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관례적으로 장관 고시는 규제심의 절차 등에서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즉시 확정고시 된다”며 “정치적 고려 때문이면 모를까 고시를 늦출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수입조건 개정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을 차질 없이 진행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강력하다. 여론이 악화하고 재협상 요구가 비등하자, 정부는 ‘조건부 수입조건 개정’이란 카드를 꺼내들었다. 한승수 국무총리도 대국민담화문에서 “미국과 다른 나라들과의 협상 과정을 지켜보며 새로운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는 언제라도 미국과 체결한 협정의 개정을 요구하겠다”고 강조했다.
가능성은 미지수다. 우선 미측에 개정을 요구할 수 있는 조건을 두고도 해석이 분분하다. 김종훈 본부장은 “정당한 사유가 있어서 개정을 요구할 경우, 상대편은 개정 절차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우리가 개정 요구를 한다 해도 미국이 이를 받아들일지를 장담할 수 없다. 정부가 미측에 개정을 요구할 의지를 갖고 있는지도 알 길이 없다.
정부가 말하는 개정 요구의 정당한 사유는 3가지. 원칙적으로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에 대한 정의를 바꿀만한 과학적 사실이 발견되거나 ▦미국이 OIE에서 광우병 위험을 통제할 수 없는 국가로 지위가 변경되는 경우에는 수입조건의 개정이 가능하다. 또 ▦일본, 대만 등 다른 나라들이 미국과의 협의에서 우리보다 강화된 수입조건을 체결할 경우에도 개정을 요구해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경우 국가간 수입조건의 내용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는 개정 요구가 어렵고, 그런 협상 결과를 뒷받침할만한 새로운 과학적 데이터가 제시되는 등의 상황 변화가 전제돼야 가능하다.
◆미국서 광우병 추가 발생시, 수입 중단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 발생하는 경우 정부는 즉각 수입중단에 나선다. 한미 합의에 정면배치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통상마찰을 빚더라도 강행하겠다고 할 정도이니 100% 확실하다. 정운천 농식품부 장관이 7일 청문회에서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통상마찰을 감수하고라도 수입중단하겠다”고 말했고, 한 총리도 ‘국민 건강이 위험에 처한다고 판단되면’이라는 단서를 달고 거듭 확인했다.
양국이 체결한 수입위생조건에서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재발할 경우 우리가 수출선적 중단을 요구할 권리는 없다.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정부의 조치는 수입금지가 아니라 검역 절차를 활용한 수입중단이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할 경우, 정부는 발병 이전에 선적된 수입물량에 대해서는 전수검사하고 그 이후에는 검역을 중단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인간 및 동식물의 생명ㆍ건강 보호를 위해 수입ㆍ교역 중단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규정한 GATT(관세와 무역에 관?일반협정) 20조 b항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미 맺은 한미 협상 합의를 뒤집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과의 통상분쟁으로 비화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송기호 통상전문 변호사는 청문회에서 “일단 수입조건 고시가 시행되면, 한미간의 다른 일반 규정보다 양국간 합의가 우선한다”며 “기존 협정을 고치지 않은 상태에서 수입을 중단하면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향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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