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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기자의 Who's now] 가수 김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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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기자의 Who's now] 가수 김장훈

입력
2008.05.09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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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장훈(41)을 만나면 사람들은 대부분 기부에 대해 묻는다. 11년간 약 50억원에 달하는 돈을 복지시설 지원과 태안 자원봉사,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와 카이스트 지원기금 등으로 썼으니 그럴 만도 하다. 본인은 월세 아파트에 살며 대출까지 받아 실천한 선행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김장훈은 대한민국 사람들의 가슴 속에 천사의 형상으로 새겨졌다.

새 싱글앨범 ‘소나기’를 발표한 김장훈을 만났다. 언제부터인가 음악이 뒷전으로 밀려버린 것 같은 형국이 고통스러웠다는 그는 이젠 편해 보였다. 무엇을 감추고 꾸미는 데 서툰 화술이 그의 샤우팅(Shouting) 창법을 꼭 닮았다. 후련한 만남이었다.

- 지난주에 마에스트로 프로젝트의 두 번째 싱글 앨범이 나왔는데 반응은 어떤가요? ‘소나기’는 가수 싸이가 군 재입대 직전 선물한 곡인데.

“다른 때보단 좋은 것 같애요. 그런 거 있잖아요. ‘좋아. 좋은데…’ 뭐 이런 거 꼭 나오잖아요. 그런데 이번엔 ‘그런데’가 없어서 좋은 거 같아요. 사실 전 이번 건 남들의 반응을 별로 신경 안 쓰는 것 같아요. 처음으로 확신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이 이상은 나한테 없다’ 그런 거죠.”

- 트로트, 발라드, 힙합, 재즈 등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로부터 곡을 받아 싱글앨범을 내는 프로젝트인데, 작곡가를 섭외하는 게 제일 어렵고 중요할 것 같아요.

“중요하죠. 제가 노래하는 게 튀잖아요, 목소리나 이런 게. 되게 걸걸하고 그래서 안 좋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요즘은 저나 예전의 김현식처럼 노래하는 사람이 없잖아요.”

- 소위 샤우팅 창법이요?

“네. 그냥 빡빡 지르면서 하는 게 없고 다들 감미롭게 부르다 보니까 작곡하는 분들이 주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 그쪽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계신 거군요.

“어느날 보니까 희한하게 다 없어졌어요. 잘 됐죠, 뭐.(웃음) 경쟁자들 다 없어지고 혼자서….”

- 김장훈씨는 중저음이 매력적인데 본인은 왜 그리 샤우팅을 고집하세요?

“시원해서요. 저도 중저음을 좋아할 거라는 걸 알아요. 사실 그 전에 나와서 히트했던 곡들은 다 중저음을 살린 곡들이잖아요.(‘슬픈 선물’과 ‘혼잣말’의 시작 부분을 불러보였다) 중저음이 감성을 움직인다는 걸 알아요.

개인 성향인 건데, 사실은 사람들이 못 받아들일까봐 죽이는 거지 원래 성향은 더 고음이에요. 지금의 고음도 약간 나이 드신 분들은 처음에 질려 하는 것 같지만.”

- 본인 스스로 ‘후천적 가수’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왜 가수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가수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고, 그냥 어렸을 때부터 성장환경이 워낙 남달랐어요. 아버지도 안 계셨고, 집도 많이 망했고, 초등학교 때 천식으로 병원에서 한 3년 살았고, 고등학교 잘려서 밖으로 돌아다녔고…. 그러다 보니까 그냥 소리지르는 게 너무 좋았어요. 저는 노래보다 소리라는 표현을 좋아해요.

본격적으로는 (김)현식이 형의 죽음이 노래를 하게 만들었어요. 현식이 형이 90년에 떠났는데, 제 얘기를 주변에 많이 하고 다녔어요. 동생이 있는데, 노래를 한다.(그와 김현식은 집안이 서로 가까운, 피는 안 섞였지만 혈연 같은 관계였다.) 현식이 형이 떠나니까 기획자들이 저를 찾은 거죠.

학교에서 연습하고 있는데 연락이 왔어요. 공연실황 앨범을 들려줬더니 바로 앨범을 내자고 하더라구요. 되게 신기했죠. 그게 1991년이에요.”

- 지금까지 공연을 몇 번이나 하셨어요?

“몇 회면 뭐하나 싶어 세다가 말았는데요, 한 2,000번 한 거 같아요, 제 단독 공연만.”

- 2년에 300회 예정으로 전국투어 콘서트를 얼마 전에 시작하셨잖아요.

“현재 7개 도시 21회 끝마쳤고 올해 남은 게 100회, 내년에 180회예요.”

- 휴가는 없어요?

“없어요, 전. 하루 중 반나절 정도 쉬는 때는 있는데 하루를 온전히 쉬는 날도 없는 것 같아요. 저 쉬면 죽어요. 못 견뎌요. 망가져요. 모르겠어요. 작년 초에 방황하느라고 일을 안 한 게 유일한데. 두 달 동안 계속 술만 마셨어요. 맨날. 낮에도 술 먹고, 아침에도 술 먹고, 밖에 나가서도 술 먹고, 처음 보는 사람이랑도 술 먹고….

와서 말 거는 사람 있으면 같이 술 마시는 거예요. 그때 (9년간 30억을 기부했다는) 기사가 나서, 저는 너무 당황스러운 게 그동안 계속 해왔던 일인데 너무 이슈가 되니까 겁도 나고 ‘오, 이게 뭐지?, 앞으로 어떻게 살지?’부터 내가 정말 음악에만 전념하면서 살아왔는데, 너무 이게 주가 되면 내가 살아왔던 꿈이나 음악은 어떡하나. 그때 제 이름 다 잃어버렸잖아요. ‘공연의 귀재’ 이런 거 다 없어지고 ‘기부천사’로 다 바뀌었잖아요. 건방진 걸 수도 있는데 저는 참 마음이 아팠거든요.”

5,000만명에게 착한 사람의 ‘낙인’이 찍히는 일은 두렵기도 할 것이다. 돈을 벌어 기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부액수를 정해 놓고 그에 맞춰 돈을 번다니. 대출을 받고 가수가 필요한 각종 행사에 나간다는데. 밤무대라고 부르는 업소에도 출연한다는데. ‘보통 사람들’에겐 존경심을 넘어 괴리감까지 느껴진다.

- 처음 소식이 알려졌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어요?

“다들 안 믿더라구요. ‘뭐 잘못됐을 거다, 장훈이 형이 그럴 인간이 아니다. 저 사람이 완전히 양아친데’.(웃음) (유)희열이 같은 경우는 ‘분명히 통장이 있을 거다. 어디다 숨겨 놨을 거다’ 그러더라구요.”

- 이런 못된 상상을 해봤어요. ‘김장훈 음주운전’ ‘김장훈 폭행’ 이런 기사가 사회면에 났다, 이때 사람들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각해 보셨어요?

“많이 생각해봤죠. 인격도 장르가 있어서 어떤 사람은 여자 문제만 아니면 다 좋은데, 저 놈은 노름만 안 하면 다 좋은데 이런 게 있잖아요. 저는 야한 생각도 많이 하고 욕도 잘 하고 성격도 까칠할 땐 까칠하고 그래요. 왔다갔다 많이 흔들리고. 그런 인격은 보통사람보다 하자가 있는 것 같아요, 제 생각에. 근데 딱 그거, 제 직업에 관련된 인격은 투철한 것 같아요.

내가 노래를 해서 영혼을 파는 사람인데 절대 쪽 팔리지 말자, 절대 부끄럽지 말자. 그런 일(기부)을 하는 것도 내가 영혼을 팔아서 돈을 버는데 이걸 갖다 재어 놓고 건물 올리면, ‘아, 그러면 난 노래 못 할 것 같애’, 그 인격 하나만 보통사람보다 괜찮은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 두 가지만 보고 다 좋게 생각한다구요.

‘야, 만약 내가 어느날, 성격이 있으니까 술집 갔다가 누구랑 시비가 붙어서 싸웠다, 신문에 났다, 어떻게 될까?’ 물론 그때 저는 아주 남자답게 일이 이렇게 돼서 저렇게 됐다, 그렇게 말하려구요. 실제 그런 연습까지 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이제 와서 예전처럼 사고를 치거나 그럴 것 같지 않은 안심이 드는 건 어렸을 때 보통사람의 몇 백배를 해봤거든요. 굳이 지금 그렇게 할 일은 없을 것 같더라구요.”

- 계속 불어나는 기부 액수에 사람들이 ‘우와, 우와’ 이러고 있는 상황인데, 그게 불가피하게 줄어들 거나 끊길 수도 있잖아요. 걱정 안되세요?

“제 능력이 안 되면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걱정은 안 해요. 사람들은 바보 같다고, 대출 받아서까지 하는 건 무모하다고들 하는데, 무모하지 않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를 하는 거예요. 조금 부대끼기는 하지만 제가 못하는 건 아니니까요. 하나 제가 하나님한테 지혜를 달라고 하는 부분이 있다면, 가령 태안이나 반크 같은 건 제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근데 아이들을 돌보는 건 11년째 해오고 있는데 그 부분은 어느날 내가 노래하는 걸 관뒀다고 해서, 내가 힘이 없어서 ‘이젠 못해’라고 하면 죄 같아요. 그 부분은 어떻게든 준비해서 돈을 못 벌어도 얘들만큼은 지속적으로 도울 수 있는 장치를 힘이 있을 때 마련해놓고 싶어요. 재단이든 뭐든 만들어서요.

기본적으로 마음이 편한 건 엄마에게 사실 집이랑 약간의 생활비가 나올 정도는 해드렸거든요. 사람들은 ‘가족한테나 잘해라’ 그러는데, 저 가족한테 잘해요. 더 이상 하면 오버라고 생각할 정도로 잘 해요. 저는 이 순간에 너한테 가장 소중한 단어가 뭐냐 물으면 가족이에요. 우리 가족은 너무 많은 아픔을 겪고 살아서,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정도로 아픔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가족에 대한 제 사랑은 말하면 빛이 바랄 만큼 각별하죠. 저희 식구가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안 계셔서 저, 엄마, 누나 둘, 매형 둘, 조카 셋, 이 아홉명이 지구상에 전부 다예요. 아무도 없어요, 친척도 없고.”

- 가족들도 그렇고, 기획사 사람들도 그렇고 주변분들이 이해하고 도와준다는 게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싫은 소리 하는 사람 없었어요?

“가족들은 저를 잘 아니까 아무 말 없었구요. 만약 반대를 한다거나 하면 제가 펄쩍 뛰고 인간 취급을 안 할 걸 아니까 아무 말 못했던 걸 수도 있고. 기획사 사람들은 하다 보면 물들죠. 물들 수밖에 없어요. 저도 그런 게 있어서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엄마(그의 어머니는 목사다) 손에 이끌려서 그런 곳을 가다 보니까, 발이 먼저 가고 마음이 생긴 경우죠.

인간이라고 태어나서 사는 사람은 누구나 그 일을 두세 번 하다 보면 거기에 빠져들게 돼 있어요. 어떤 곳에서도 얻지 못하는 충만함과 행복을 얻거든요. 인기? 돈? 환호? 그런 건 다 지나가는 바람이지만, 이건 사람을 근원적으로 행복하게 해주고 눈물 나게 해주는 거라서 겪으면 자연스럽게 알게 돼요.

저는 솔직히 사람들이 저한테 하는 대단하다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아요, 마음 속으로. 왜냐면 그 현장엘 나가보면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아 진짜, 어떻게 이렇게 살까, 싶은 사람들이 많거든요. 저는 그렇게 못 살아요.

아이들, 장애아들 열 몇 명씩 데리고 있는 분들 보면은…. 그런 분들이 대단한 분들이지 돈을 내고 하는 건 진짜로 어렵지 않아요. 정말 너무너무 쉬운 일이에요. 사람들이 저한테 몰아준 걸 그냥 전달해 주는 거예요. 후회 안 하세요? 아깝지 않으세요? 이런 질문은 있을 수가 없어요.”

- 뭐가 그렇게 김장훈씨를 미치게 해서 계속하게 만든 걸까요?

“사람들 생각엔 저 사람이 착하고 선한 마음이 있어서 남들을 배려하는 거 같겠죠. 그런데 제 시작은 울화통이었어요. 엄마 손에 이끌려서 아이들을 보러 갔는데 정말 울화통이 치미는 거예요.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이 예쁜 애들을 왜 버리고 갔을까, 왜 얘들은 이렇게 살아야 하나, 국가는, 이 새끼들 도대체 뭐 하는 건가. 그 다음에 울화통이 저한테 온 거예요.

‘너는 뭐 했니, 그럼? 너는 아무것도 안 하고 세상에 대고 울화통을 터뜨리냐? 그래, 그럼 이 부분이라도 내가 하자. 애들만이라도 가끔 와서 보자’ 한 거죠. 제가 살려고 시작한 거예요.

뭐가 좋냐면요. 두 달 가까이 갈 동안 애들이 마음을 안 열더라구요. 웃지도 않고. 그러다가 삐죽삐죽 하던 애들이 어느날 나한테 안겨서 뽀뽀를 하고 그럴 때, 그때의 그 희열은, 꼬마 아이고 저는 어른이지만 인간간의 소통 있잖아요.

깊은 교류와 교감, 그게 딱 왔을 때 다짐했죠. 얘가 나한테 연 마음을 내가 배신하면 정말 난 나쁜 사람이다. 11년이나 어떻게 하셨어요 묻는데, 하다 보면 그렇게 돼요. 뺄 수가 없어요, 그건. 빼면 안 되는 거고.”

어쨌거나 기부를 하는 것도 김장훈 욕망의 충족일 것이다. 그걸 공적인 욕망이라고 한다면 한편으로는 아주 사적이고 개인적인 욕망들도 있다. 저 차를 사고 싶다든지, 저 옷, 저 악기를 사고 싶은 세속인의 욕망을 그는 어떻게 다스릴까. 충돌은 없을까.

- 가끔은 김장훈씨한테서 삶의 균형이 기우뚱해 있다는 위태로운 인상도 받아요.

“저 굉장히 럭셔리한 사람이에요. 사고 싶은 거 있으면 사요. 월세 살고 이런 것만 부각돼서 그렇지 저는 먹는 것도 좋은 것 맛있게 먹고, 옷도 비싼 옷 입고 그래요. 제가 그런 데 계신 원장님들 발끝도 못 좇아 간다고 하는 게 저는 그렇게 못 살아요.”

- 기부금을 만들기 위해 서기 싫은 무대에 설 때도 많을 텐데 하기 싫을 때 있지 않아요?

“순간적으로 있는데요. 오히려 예전보다는 줄어들었어요. 자기 개인을 위해서만 할 때는 한계, 제약이 많아요. 서글프기도 하고. 근데 개인이 아니라 좀 넓어지면 마음도 넓어져요. 예전에는 하루 네 군데 노래하러 다니면서 시속 180㎞로 빗길 달리고 할 때 혼자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조국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돈 몇 푼 벌자고 왜 이렇게 굶어가면서 일을 해야 할까’ 그랬어요. 오늘도 김밥 두 줄 먹었거든요. 하지만 짜증나거나 서글프지 않아요. 개인이 아니기 때문에.”

- 예전엔 안 다니던 업소로 노래하러 가는 게 음악 하는 사람한테는 자존심 상하는 일일 수도 있는데, 김장훈씨한테는 모든 무대가 평등한가요?

“그렇지 않은데, 점점 더 평등해지고 있어요. 제가 선호하는 층은 20, 30대인데, 낮에 백화점 행사 12시에 가면 다 아줌마들이거든요. 근데 너무 재밌어요. 제가 그러거든요. ‘오늘 소녀를 만들어 드리겠다’고. 어느 순간 딱 느낌이 올 때가 있어요. 20, 30대에서 느끼지 못하는 말로 못할 감동이요. 제가 많이 배운 게 내가 관객에 대해서 마음을 닫는다는 게 참 그렇구나.

밤일 가는 것도 합리화를 시키기 시작했죠. 술을 마시든 뭘 하든 관객은 관객인데, 그럼 나도 술을 마시고 함께 섞이면 되는 거 아냐. 가면 저도 대기실 가서 술을 마셔요. 제가 느낌을 알아요, 거기 가면 연예인들이 후딱 왔다가 후딱 가잖아요, 싫으니까. 근데 저는 오히려 30분쯤 일찍 가서 다른 아마추어 가수들한테 ‘사진 찍을래?’ 그래요.

보통 그런 데 가서 증거 남기기 싫어서 사진 안 찍거든요. 어차피 포스터 다 붙었는데요, 뭘. 사장님한테 손님들 많이 왔는지 묻기도 하고. 다 같은 사람이죠, 뭐. 거기서 술 먹던 사람이 공연장 가면 관객이 되는 거고. 솔직히 갈 때 마음이 다른 데 갈 때처럼 100% 편안하지는 않아요. 20~30%는 긴장이 되고 그래요, 제가 안 가본 세상이니까. 그래서 평등해져 가고 있다고 말한 거예요.”

- 악의적으로 얘기하자면, 마치 음악이 기부의 수단인 것 같기도 해요. 음악 활동에도 돈이 엄청 드는데 그 돈은 안 아끼세요?

“안 아끼죠. 저는 앨범만 안 내면 돈 많이 벌 거예요. 이번에 뮤직비디오만 생돈 3억5,000만원이 들어가거든요. 사람들은 요즘 트렌드에 뮤직비디오에 뭐 하러 그렇게 하냐고 그러는데 열심히 하고 잘 만들어서 나쁠 건 없잖아요. 이렇게 오래 있다가 곡을 하나 내는데, 나는 곡 내는 데 내 모든 걸 최선으로 하고 싶거든요. 그건 모든 활동의 근간이 되는 거예요.

누군가는 이런 걸 지혜롭게 아껴서 기부를 더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제가 음악을 하면서 부끄러워지는 일이 생기면 저는 다 무너지는 거예요. 제 삶 자체가 무너지는 거죠. 왜냐면 저는 노래가 아니었으면 죽었을 거거든요. 일단 제가 본업인 음악을 지켰을 때 나머지가 존재하는 거죠. 자꾸 기사에 제가 공연수익금을 좋은 일에 썼다고 나오는데 저 그런 적 없어요.

공연에서 나오는 수익금을 다른 데 쓰는 건 정말 나쁜 짓이라고 생각해요. 공연에 오는 사람들이 그 비싼 돈을 내는 건 좋은 공연을 보여달라는 의미인데, 지 맘대로 거기서 얼마를 빼서 어디다 쓰는 건 말도 안 돼요. 공연에서 들어온 수익은 전부 다 공연에 재투자를 하는 거죠.”

- 사실 40억원 기부 얘기를 들었을 때, 김장훈씨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놀랐던 게 ‘배용준도 아니고 무슨 돈을 그렇게 많이 벌었을까’였어요. 어떻게 돈을 그렇게 많이 버셨어요?

“왜요. 사실 번 건 몇 백억을 벌었죠, 10년 동안. 예전에는 앨범이 몇 십만장 나가고 거기다 행사, 광고가 있잖아요. 행사 같은 게 다 소화 못 할 정도로 많이 들어오니까 액수도 올라갔고. 제가 뽑혔던 순위 중에 가장 기분 좋았던 게 ‘공연 기획자들이 뽑은 부르고 싶은 가수 1위’였어요. 어떤 무대든 올라만 가면 띄워놓고 내려온다는 게 이유였는데, 어떻게 보면 그게 일종의 경쟁력이죠. 저는 그런 게(공연 섭외)가 많아요.”

- 공황증은 어떠세요? 요즘 좀 주무세요?

“요즘 못 자요. 만신창이예요. 얼마 전에 어떤 계기가 있어서 다시 공황증이 좀 도졌어요.”

- 누가 곁에 있으면 잠을 좀 잘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결혼하시면 좀 낫지 않겠어요.

“결혼 못 하죠. 누구랑 결혼을 해요. 지금 이러고 살고 있는데 결혼하자고 하면 큰일나죠. 전 진짜 여자가 무서워요. 감당이 안 돼요. 그 여자도 제가 감당이 안 되겠지만. 그런 건 있어요. 누가 마루에 있으면 좀 안심이 되고. 문제는 누가 없는 것도 못 견디지만 누구랑 같이 있는 것도 못 견뎌요. 좀 이상해요. 정상은 아닌 것 같애요, 제가 생각해도.”

- 뚱뚱한 여자를 좋아하신다면서요?

“네. 제가 아버지가 없으니까 엄마가 일하시느라 스킨십 같은 걸 못 해보고 자랐어요, 한번도. 그러다 보니까 약간 푸근한 여자가 좋아요. 근데 꼭 뚱뚱하다고 푸근한 건 아닌 것도 같고 그래요. 요즘엔 말을 못 하겠는 게, 이상형을 따질 나이가 아니에요, 제가. 밥집 같은 데 가면 엄마랑 아빠랑 애들이랑 같이 밥 먹는 거 보면 제가 대리만족을 하거든요. 계속 그걸 보고 있어요, 너무 좋아 보여서. 가끔 그 행복에 일조하는 뜻에서 밥값을 내드리고 싶을 때도 있어요.”

- 그것도 기부인가요?

“….”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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