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중앙은행에겐 물가안정이 먼저였다. 적어도 현 시점에선 경기하강 보다 물가상승이 더 심각하다고 판단했다.
8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최근 정부의 압박과 시장의 예상을 뒤로 하고 이달 기준금리를 5.0%로 동결했다. 특별히 여건이 바뀌지 않는 한, 다음달 인하 가능성도 불투명해 보인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이날 금통위 회의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금리동결의 당위성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먼저 물가. 이 총재는 "지난달 4%를 넘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앞으로도 여러달 한은의 목표 상한(3.5%)을 넘을 것 같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하반기 들어 안정될 것 같다"던 그동안의 전망은 "연말쯤이나 돼야"로 바뀌었고 그마저도 "환율이 안정된다면"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그는 "요즘 원자재가격 예측이 워낙 어려워 6개월 이상 전망도 상당히 불확실하다"고 토로했다. 한은의 물가 전망이 바뀌었냐는 질문에도 "바뀌었다고 보면 된다"며 "당초 3분기쯤엔 3.5% 정도로 내려올 것 같았는데 지금은 더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정부가 인하의 이유로 내세우는 경기부양에 대해서는 둔화를 인정하면서도 확대해석은 경계했다. 이 총재는 "당초 한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4.7%)가 4.5% 이하로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6%에 가까운 정부 목표와는 큰 인식 차이다. 한은은 이날 금통위 발표문에서도 기존의 '경기상승세 주춤'이란 표현을 '둔화'로 명시할 만큼 경기하강에는 공감을 표했다.
다만 이 총재는 "한 분기 결과에만 집착하면 안 된다"고 경계했다. "올 1분기 성장률이 전기대비 0.7%에 그쳤지만 지난해 4분기(1.6%)와 합치면 6개월 성장률은 2.3%로 이를 연율로 따지면 여전히 4%대 후반"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최근 경기만 갖고 그렇게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라는 뜻으로 읽힌다. 그는 최근 정부의 인하압박성 발언과 관련해서도 "경제정책 책임자는 성장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다"고 했다.
최근 급등세를 보이고 있는 원ㆍ달러 환율에 대해서도 이 총재는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한은은 이날 '최근 국내외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유가 및 원ㆍ달러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경제성장률은 낮아지고 물가와 경상수지는 악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도 "원화 약세가 경제성장 측면에서는 도움이 되겠지만 경제 각 분야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그는 "유가와 환율 중 환율이 훨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환율 급등에 경계감을 표시했다.
3%로 벌어진 미국과의 금리차 역시 이 총재는 "자유경제에서 금리차는 늘 있을 수 있다"며 "통화정책의 한 제약조건으로 봐야지 그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앞으로의 금리결정 방향에 대해 "여러 여건이 현재 한은의 판단대로 계속 가는지, 아니면 달라지는 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밝혀 물가와 관련한 근본적 상황변화가 없는 한 정책방향이 달라지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전효석 연구원은 "한은이 물가상승 우려를 심각히 여기는 상황에서 미국도 금리인하를 사실상 종결해 한은이 금리를 내리기는 더 어려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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