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 나남출판
오늘 박경리 선생이 다음 생의 거처가 되기를 평소 원했었다는 고향 경남 통영의 미륵산 기슭에 묻힌다.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고인이 올해 3월 발표한 3편의 유작 시 중 한 편인 ‘옛날의 그 집’이다. 그는 소설을 쓰기 전에 당초 시를 썼다. 2000년까지 쓴 시를 모은 시집 <우리들의 시간> 자서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를 쓴다는 것은 큰 위안이었다. 자정적 과정이기도 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송두리째 빼앗겼던 저 옛날 일제시대, 학교라는 조직 속에서 몰래 시를 쓴다는 것이 유일한 내 자유의 공간이었고 6ㆍ25 고난의 세월 속에서는 나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어 주기도 했다. 바라건대 눈 감는 그날까지 내게서 떠나지 않고 시심은 내 생의 버팀목이 되어주기를…” 우리들의>
쓸 때 그는 살아 있었다. ‘글을 쓸 때는 살아 있다/ 바느질할 때 살아 있다/ 풀을 뽑고 씨앗 뿌릴 때/ 살아 있는 것을 느낀다// 서쪽에서/ 빛살이 들어오는 주방/ 혼자 밥을 먹는 적막에서/ 나는 내가 죽어 있는 것을 깨닫는다’(‘꿈2’)
그의 <토지> 는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위한 대하소설이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을 그렇게 죽음과 맞바꾸며 벼려낸, 대서사시이기도 하다. 토지>
<우리들의 시간> 에 ‘문필가’라는 시가 실려 있다. ‘붓 끝에/ 악을 녹이는 독이 있어야/ 그게 참여다// 붓 끝에/ 청풍 부르는 소리 있어야/ 그게 참여다// 사랑이 있어야/ 눈물이 있어야/ 생명/ 다독거리는 손길 있어야/ 그래야 그게 참여다’ 우리들의>
독하게, 사랑과 눈물과 생명을 다독거리는 손길로, 그는 쓰다 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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