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조류 인플루엔자(AI) 등 신종 인플루엔자 방역체계가 낙제점이라는 사실이 감사원 감사를 통해 밝혀졌다. 정부는 신종 인플루엔자가 크게 유행할 경우 5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어 이 같은 무력한 방역체계가 엄청난 재앙을 부를 수도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8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감사원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감사원은 지난해 4, 5월 구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등 방역당국을 상대로 '주요 법정 전염병 방역관리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보고서는 질병관리본부가 시뮬레이션한 결과, 국내에서 고병원성 AI가 대유행하면 900만명 이상의 환자가 발생하고 사망자는 5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측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종 인플루엔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구체 계획이 대단히 미흡하고 검역시스템도 후진적이었다. 우선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에 따라 신종 인플루엔자 대유행에 대비해 미국은 600만명분, 일본은 1,000만명분의 예방백신을 비축하고 있으나 한국은 비축량이 전무하다. 또한 신종 인플루엔자 대유행 시 필요한 격리병상은 최대 3만1,000여개이나 4분의1수준인 6,200여개 밖에 확보돼 있지 않고, 미세입자까지 차단하는 고성능마스트(N95)도 필요 소요량(2,000여만개)보다 훨씬 적은 30만여개만 보유하고 있다. AI를 치료할 항바이러스제도 선진국은 전 인구의 20% 안팎을 비축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인구의 2%인 100만명 분에 불과하다.
AI 대유행에 대비, 기본 및 구체계획을 수립해야 할 광역자치단체도 서울 외에는 모두 통제ㆍ관리 조직계획만 세우고 항바이러스제 배분, 병상운용, 학교ㆍ직장 등 지역사회관리계획 등 구체계획은 전혀 만들지 않았다. 기초자치단체는 기본계획도 없었다.
해외의 AI 인체감염 발생을 감시ㆍ검역하는 시스템도 엉망이다. 해외에서 AI 발생 후 여행객이 들어오는 공항 등에 위치한 국내 검역소에 검역 강화를 통보하는 데만 최소 2일에서 최장 64일까지 걸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감염 확산 방지의 관건인 신속 검역을 사실상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2005년 6월 인도네시아에서 AI 인체감염환자가 발생했을 때 질병관리본부는 발생 3개월 후 각 검역소에 인도네시아 여행객에 대한 검역 강화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질병관리본부가 WHO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AI 발생 여부를 파악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지방자치단체는 더 심각했다. 천안 아산 김제 문경 등 AI가 발생한 5개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예방조치 실태를 조사한 결과, 가금류 살처분에 참여한 방역요원에 대한 인적사항을 파악하지 않고 살처분 후 유사증상 조사 등 사후관리도 소홀했다. 아산시는 2006년 12월 AI 발생 농가의 위치조차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운 5만분의 1 지도로 오염지역(반경 500m 이내) 위험지역(3㎞ 이내)을 대충 설정, 위험지역 내 가장 큰 닭 농장을 살처분 대상에서 제외했다.
정진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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