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후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 발생하는 경우 즉시 수입 중단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미국과의 통상 마찰까지도 감수하겠다고 했다. 벼랑 끝에 몰린 정부가 내놓은 극단 처방인 셈인데, "왜 협상에는 반영하지 못하고, 뒤늦게 이렇게 위험한 선택까지 감수해야 하느냐"는 비판이 거세다. 야당 의원들은 7일 청문회에서 "그럴 바에야 수입위생조건 고시를 유보하고, 재협상에 나서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몰아 세웠다.
'굴욕 협상' '퍼주기 협상' 논란의 핵심 중 하나가 미국에서 추가로 광우병이 발생해도 우리 정부가 수입 중단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ㆍ미 양국 정부가 서명한 수입위생조건 5조는 '미국에 광우병이 추가 발생하는 경우 미국 정부가 즉시 철저한 역학조사를 실시한다'고만 돼있다. 조사 내용에 대해 한국 정부와 협의하고, 조사 결과를 통보해주면 그 뿐이다. 수입 금지는 오직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미국의 '광우병위험통제국가' 지위를 박탈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쇠고기를 수입하는 우리 정부에는 아무런 권한이 없고, OIE의 판정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광우병 발생 시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결국 양국 합의 내용에 정면 배치된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이날 청문회 답변에서 "통상 마찰을 감수하더라도"라고 단서를 단 것도 이 때문이다. 민동석 농식품부 차관보는 "우리 측에서 검역을 중단하면 미국이 바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를 할 수도 있고, 새로운 협의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정부 측은 수입 중단의 근거로 WTO 회원국들이 준수해야 하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예외 조항을 들고 있다. GATT 20조 b항은 인간이나 동ㆍ식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수입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양국이 체결한 수입위생조건 역시 WTO 협정에 합치돼야 하는 만큼, 미국에 광우병이 추가 발생하면 이 조항을 들이대며 수입을 금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아 보인다. 당장 양국 협상 결과에 반하는 내용을 우리 정부가 공식 발표한 것만으로도, 통상 마찰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더 나아가 광우병 발생을 이유로 수입 금지에 나서게 된다면, 파장이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이재민 한양대 교수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국민 건강 보호를 위해 수입을 금지할 수 있다는 GATT 예외 조항을 적용할 수 있는지 해석 상 논란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당연히 미국 측이 WTO 제소에 나설 것이고, 우리니라의 대외 신인도가 크게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야당 측은 이제 와서 합의문에도 없는 수입 금지를 택하느니, 재협상을 하자고 공세 강도를 높이고 있다. 통합민주당 정세균 의원은 "만약 협상을 체결한 상대국 정부와 대통령이 협상 결과를 뒤집는 내용을 얘기한다면 우리 정부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며 "아마추어 적인 태도를 버리고, 지금이라도 재협상을 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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