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반에서 8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시기에 남자들의 긴 머리카락은 불건전한 외래문화의 상징이었고 자정 이후의 외출은 바로 퇴폐와 타락을 뜻했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모든 버스는 검문소에 멈춰 서서 총과 가위를 든 군인과 경찰의 검문을 받아야 했다.
제복을 입고 총을 든 사람이면 아무런 제약 없이 젊은이들의 몸을 뒤져 소지품을 검사하고 긴 머리카락을 가위로 싹둑 자를 수 있었다. 중ㆍ고등학생들은 모두 빳빳한 목둘레 깃이 달린 교복을 입고 군인처럼 거수경례를 해야 했고 극장이나 주점에 출입하다 적발되면 어김없이 정학처분이 내려졌다. 우리는 모두 같아야 했고 서로 다를 권리는 주어지지 않았다.
■ 다른 것과 틀린 것은 다른 것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같음’은 젊음의 속성이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숨 막히는 규율을 어떤 식으로든 깨고 싶었다. 요즘 말로 튀고 싶었던 것이다. 어떤 학생은 바지의 밑 부분을 넓게 늘려 당시에 유행하던 나팔바지를 만들어 입었고 어떤 학생은 교복 속에 멋진 사복을 입고 교복의 단추를 풀어 개성을 표현하기도 했다. 우리는 어른들이 정해준 것과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어른들은 이렇게 ‘다름’을 추구하는 우리들의 행동을 ‘틀린’ 것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그런 경향성을 지닌 학생에게는 불량기가 있다는 꼬리표를 붙여 ‘관리’했다. 요컨대 행동과 차림새가 눈에 띌 정도로 남들과 달라서는 안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여기도록 교육되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다른’과 ‘틀린’을 구분 없이 사용하는데, 이는 그와 같은 잘못된 통념이 우리 속에 내재화한 결과다.
이런 혼동은 엄청난 도덕적ㆍ문화적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초등학교까지 내려간 왕따현상이 그 중 하나다. 다른 것을 다른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틀린 것으로 여겨 억압했던 문화적 경험이 세대를 통해 전해지면서 폭력성이 가미된 것이다. 동성애자, 외국인 노동자, 탈북자, 결혼이민자, 장애인, 혼혈인 등 소수자들이 정당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현상도 ‘다름’에 가해지는 문화적 억압의 결과다.
‘강부자 내각’ 논란 끝에 임명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취임 후 곧바로 법으로 임기가 보장된 공공기관장들의 사퇴를 종용하고 나섰다. 그들은 이전 정권에 의해 임명되었고 따라서 지금의 집권세력과 다르다는 것이 그 이유다. 어떤 것이 어떻게 다른지는 따질 것도 없다. 임명권자가 정권을 잃었으니 모든 것을 내놓으라는 식이다.
문화부 장관의 ‘다름’에 대한 억압은 비상식적이고 반문화적일 뿐 아니라 불법적이고 폭력적이다. 그 방식이 현 집권세력이 비난해 마지않던 전 정권의 코드인사 행태를 능가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비상식적이고, 다양성과 창의성을 생명으로 하는 문화를 권력 앞에 줄 세우려 한다는 점에서 반문화적이다.
이들이 모두 법으로 임기가 보장된 직위라는 점에서 불법적이며, ‘물러나지 않으면 해당기관에 불이익을 주겠다.’, ‘재직 중 문제를 폭로 하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는 점에서 폭력적이다. 그에게 ‘다른’ 것은 여전히 ‘틀린’ 것이며 같고 다름의 기준은 최고 권력자와 눈을 맞춘 자기 자신이다.
■ 점령군같은 새 정부 문화장관
“지방서도 서울 문화를 접하도록 하겠다”는 그의 최근 발언은 문화의 기준조차 서울의 기득권임을 보여준다. 서울의 문화를 살찌워 지방에 흘러내리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결국은 지방을 그 지방 고유의 문화 생산지가 아닌 서울 문화의 소비지 또는 아류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방문화의 고유성과 다양성은 안중에도 없다. 서울과 지방 사이에 서열은 있을지언정 다름은 없다. 그의 눈에 서울과 다른 지방은 불온하다.
하지만 서로 다르다는 것은 문화 창조의 기본 조건이다. 서로 달라야 다양성이 생기고 다양해야 새로움이 싹튼다. 최근 문화부 장관의 행적을 보며 그 위로 총과 가위를 들고 장발을 잘라내던 문화점령군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은 분명 불길한 징조다.
강신익 인제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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