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의 허술한 방역으로 사람도 감염되는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서울까지 북상하자 시민들의 ‘새 공포증’이 증폭되고 있다. 공원이나 거리에서 비둘기, 까치 등을 피해 다니는 것은 물론이고 살처분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7일 낮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보라매공원. 시민들은 모이를 먹는 비둘기떼를 피해 한쪽 벤치에만 몰려 앉아 있었다. 손녀, 손자를 데리고 나온 오희군(68ㆍ여)씨는 “AI 발생 소식을 접한 뒤 비둘기, 참새, 까치를 조심하게 됐다”며 “애들에게도 비둘기에게 과자를 주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어린이 10여명을 데리고 산책 나온 어린이집 교사 정다워(24ㆍ여)씨도 연신 “비둘기를 조심하라”며 아이들 단속에 정신이 없었다. 정씨는 연못 옆에서 점심식사를 하면서도 비둘기떼가 다가올까 봐 계속 주위를 경계했다.
서울역광장에서도 비둘기는 천덕꾸러기가 됐다. 대부분 시민들은 비둘기가 날아 다닐 때마다 입과 코를 막았고, 아예 비둘기를 피해 돌아가기도 했다.
열차를 기다리던 사공황(47)씨는 “오리, 닭, 비둘기 등 새들은 피해 다니게 됐다”며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모(45ㆍ여)씨는 “AI에 걸린 오리처럼, 도시 미관을 해치고 나쁜 병까지 퍼뜨리는 비둘기를 모두 잡아서 살처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진구청이 꿩을 구입한 곳으로 알려진 성남 모란시장도 타격을 입었다. 평소에는 수천 명이 드나들던 모란시장 가금류 골목은 이날 손님이 끊겨 사실상 철시 상태였다. 모란 가축상인회장 전진섭(52)씨는 “새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면서 이곳 26개 업소의 매출이 최대 90%까지 감소했다”고 하소연했다.
광진구 보건소에는 이날 ‘AI에 걸린 것 같다’는 주민들의 상담 전화나 진료 문의가 쇄도했다. ‘어린이 대공원을 다녀온 후 열이 나고 감기 기운이 있다. AI에 걸린 것 아니냐’는 전화로 보건소는 온종일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고, 일부 시민은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보건소 관계자는 “모두 단순 감기 환자였으며, 안심해도 된다는 말을 들은 뒤 돌아갔다”고 말했다.
시민 불안이 확산되자 당국도 대대적인 조류 포획작업에 나섰다. 광진구청은 관내 건국대 일감호에 사는 10여 마리의 오리 등 총 40여 마리 조류 포획작전을 펼쳤다. 이날 포획작업에는 구청 공무원, 119구조대, 해병전우회 회원 등 총 120명이 동원됐으나 포획한 것은 한 마리에 불과했다.
구청 관계자는 “날개 달린 새를 모두 잡기 어려운 것은 알지만, 주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이 방법 밖에 없다”고 말했다. 광진구는 일감호의 조류를 모두 잡힐 때까지 포획작업을 무기한 계속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AI의 인체 감염 가능성은 낮은 만큼 너무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서울대 수의학과 김재홍 교수(조류질병학)는 “AI에 감염된 조류 근처를 지나간 정도로는 사람이 AI에 감염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서 인체 감염 사례가 있었던 것은 해당 지역 문화 특성상 사람이 가금류와 한 집에서 뒤섞여 살면서 조류 분비물이 인체 내부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농림부 동물방역팀 관계자도 “광진구청에서 사육하던 조류들은 외부 야생 조류들과 격리돼 있었던 만큼 서울 시내 비둘기나 까치, 참새 등의 AI 감염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밝혔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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