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자대상 최고 영예인 대상을 받게 된 최양식(78) 서울 덕원예술고 교장은 55년째 '현역'으로 교직을 지키고 있다. 팔순을 바라보는 고령이 무색할 정도다. 한국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53년 대구 성광고 수학교사로 부임한 이후 반 세기가 넘도록 그의 활동 무대는 학교 현장이다.
7일 오후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덕원예고를 찾은 시각에도 최 교장은 자료에 파묻혀 있었다. "요즘 새 정부가 교육 개혁에 한창이지 않습니까? 일본과 싱가포르의 영재교육 현황을 공부하느라 조금 바쁩니다."
그는 교육계에서는 이름이 꽤 알려진 인물이다. 교육에 헌신한 긴 세월만큼이나 무수한 결실을 맺은 까닭에서다. 덕원여고 교장 재임 시절인 82년 설립한 '덕원관'은 학교 인성교육의 효시로 꼽힌다. 전국에서 400여명의 교장들이 덕원관 운영을 둘러본 뒤 이를 벤치마킹했다. 상당수 학교에 있는 수련원은 '덕원관'을 본떠 만든 것이다.
"당시 중학교 교사가 제자를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일어나 선생님에 대한 여론이 굉장히 좋지 않았어요. 열린 대화의 장을 마련해 사제간의 신뢰를 회복시키자는 취지로 시작했던 일인데, 뜻밖의 호응을 얻은 것이지요."
이처럼'소통'을 유독 중시하는 최 교장의 확고한 교육철학은 지나온 삶과 무관치 않다. 북한이 고향인 그는 당시 러시아 모스크바로 국비 유학을 다녀올 만큼 촉망 받는 엘리트였다.
그러나 해방 공간에서 학생 반공운동에 연루돼 정든 고향을 등져야 했다. 이념의 잣대로만 평가하는 사회 체제에 신물을 느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현실을 견디기 힘들었다.
최 교장의 교육에 대한 열정은 장학 사업으로 이어졌다. 85년 실향민들과 함께 만든 장학 재단을 통해 매년 200명이 넘는 중ㆍ고교생 및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수익사업도 아닌 부분에 20여년을 한결같이 매달린 이유를 알기란 어렵지 않았다.
"3년 전에 멍한 표정으로 복도 창문 앞에 서 있는 여학생이 있길래 교장실로 불렀어요. 지방에서 유학온 1학년이었는데,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해 죽고 싶다고 하더군요." 화들짝 놀란 최 교장은 다음날부터 이 학생에게 직접 일본어를 가르쳤다.
만화가가 되고 싶어하는 제자의 소망을 이뤄주기 위해서였다. 이 학생은 현재 일본의 한 유명 예술대학에 진학해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교육의 힘은 가까운 곳에 있어요. 아이들이 마음껏 공부하고 목표를 위해 재능을 펼쳐낼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는 것이지요. 그것은 교사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 창조적인 사람이 되라고 다그치지만 말고 교사가 먼저 실력을 갖추고 진심으로 학생들을 대한다면 존경은 저절로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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