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어떠한 이유로 커뮤니케이션이 이토록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인가. 텔레비전, 혹은 또 다른 다양한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장치들의 놀라운 발전과 일상화 때문인가? 이러한 단순한 이유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오히려 커뮤니케이션 그 자체가 새로운 유토피아의 중심에 있는 것인가?
특히 사회주의, 자유주의 등등 거대 이데올로기들이 혼란에 빠져있는 현 시대를 생각한다면 커뮤니케이션은 이들 이데올로기를 대체하고 있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인가? 이러한 위치를 점유한 커뮤니케이션의 유토피아는 어떠한 상황을 상정하고 있는가?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와 광우병 논란으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이번 사태는 한 지상파 방송사의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라는 프로그램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주요 매체들은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초점을 흐리는 내용들을 양산해 냈다. 미국산>
여기에 네티즌들이 가세하면서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커지며 논란만 증폭되고 있으며 급기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까지 치달았다.
매체는 실제 사실이 무엇이고 사실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를 국민들에게 정확히 알려야 하고 또 국민들은 알 권리가 있다. 그러나 기존의 매체들을 통해서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혹은 거짓인지를 도대체 알 수조차 없어 그 혼란만 더 가중되고 있다. 말은 많은데 들을 말이 없는 형국이다.
내용 없는 커뮤니케이션이 난무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광우병 괴담, 독도 포기, 인터넷 종량제, 각종 예언 등 일련의 괴담들이 그 종류도 다양하게 인터넷을 통해 빠른 속도로 유포되는 또 다른 현상을 이끌고 있다.
일련의 사태 속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정점에서 소위 ‘내용 없는 커뮤니케이션’은 그 자체 목적성에 함몰하면서 유래 없는 배타성, 비관용과 편협성으로 치닫고 있음을 본다.
물론 기존의 미디어는 계속해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겠지만, 그 역할과 영향력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미디어 이용의 변화는 문화의 다양성이 증대하고, 표현의 영역이 확대되는 양상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규제가 불가능하고 기술적인 발전으로 인해 표현의 한계 역시 거의 소멸되고 있는 형편이다.
새로운 정치, 문화 공간의 출현은 매스 미디어 시대에 정치, 문화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소비의 주체로 전락했던 일반대중이 다시 정치, 문화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촛불시위의 대부분이 중ㆍ고등학생이라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각종 커뮤니티들의 등장, 문화적 취향, 정치적 지향 혹은 단순한 기호에 의한 각종 공동체들의 활성화는 근대적 정치, 문화사회에 비해 결사체의 수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다.
새로운 매체들은 이러한 공동체들 간의 의사소통 및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시키고 이를 활발히 이용하는 새로운 정치, 문화의 주체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주체들의 다양한 정치적, 문화적 실천이 일어나는 새로운 공공영역을 활성화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기존의 매체들과 인터넷 등 새로운 매체가 가까운 장래에 처하게 될 상황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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