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가는 골프공의 위치와 속력은 정확히 잴 수 있다. 처음 골프클럽이 때린 힘과 각도만 알 수 있다면, 위치_운동량(질량x속력) 좌표에 골프공은 한 점으로 찍힌다. 이를 시간_위치 좌표로 바꾸고, 적당히 공기저항과 바람을 감안하면 골프공의 가상궤적을 스크린 위에 입체영상으로 보여줄 수도 있다.
그러나 소립자를 세게 때려 날아가게 하더라도 그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측정할 수는 없다. 정확한 위치를 포착했다 싶으면 운동량을 측정할 수 없고, 운동량을 제대로 쟀다 싶으면 위치를 정확히 잡아챌 수 없다.
■1927년 W.K. 하이젠베르크가 끌어낸 이 ‘불확정성 원리’야말로 고전역학과 결별한 양자역학의 핵심 기본원리라고 할 만하다. 소립자의 위치와 속력은 확률분포로나 나타낼 수 있을 뿐이다. 서로 관련이 있고, 측정할 수 있는 두 가지 물리량인데도 한꺼번에 정확히 잴 수는 없다는 이 원리는 문학과 철학, 사회과학 등에 풍부한 시사점을 던졌다. 모순과 조화가 양립하고, 있고 없고가 다르지 않다는 새로운 착상을 자극하고, 상상과 통찰의 폭과 깊이를 늘렸다. 1970년대 세계적 베스트셀러이자 당대의 유행어이기도 했던 존 갈브레이드의 <불확실성의 시대> 가 좋은 예다. 불확실성의>
■사람 사는 세상이 꼭 소립자 세계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찰나에 오만 생각을 다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수없이 얽히고 설키어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이치를 한꺼번에 잡아채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인다. 비교적 진실에 가까울 확률이 높은 쪽을 찾으려고 부단히 애쓰는 게 고작이리라. 삶과 밀접히 관련돼 정부(正否) 인식과 호오(好惡) 정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생활의 과학’도 다르지 않다. 지난 번 이 난에 쓴 ‘위험 감수’로 “광우병 쇠고기나 실컷 먹으라”는 말을 들은 마당이라 이번에는 유전자변형(GM) 옥수수로 예를 바꾸었다.
■동물실험을 근거로 GM 옥수수의 위험성을 흔히 말한다. 그런데 위험하기는 농약성분이 남은 옥수수도 다르지 않다. 제대로 위험성을 거론하려면, GM옥수수가 농약을 치지 않거나 양을 줄여도 병충해에 이길 수 있는 품종이란 점에서, GM 옥수수와 ‘농약 옥수수’를 나란히 비교해야 한다.
옥수수로 만든 각종 식품을 먹지 않을 작정이라면 몰라도 어차피 먹는다면 조금이라도 위험도가 낮은 게 낫다. 물론 남들 먹는 대로 먹어도 어차피 유의미한 양에 이를 가능성이 없다면, 이런 선택조차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의 씨앗일 뿐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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